여호수아 8장 히브리어 원어 설교말씀은 에발 산에 쌓은 한 제단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곳에 쌓은 제단은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새 돌로 만든 제단입니다. 이곳에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습니다. 우리는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든 제단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에발 산에 쌓은 한 제단(수8:30-35)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있을 때 모세가 죽고 난 후에 여호수아에게 영적 지휘권이 넘어오게 됩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고 여호수아는 복음의 대표입니다. 광야는 이 세상을 상징한다면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천국은 율법의 행위로는 들어갈 수 없음을 모세를 통해서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지시를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는 이미 이방 족속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과 싸우지 않으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관문이 여리고 성입니다. 그다음은 아이 성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온 것은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점령한 후에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내고 나면 자신이 한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공로는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달랐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성들을 점령하고 난 후에 즉시 에발 산에 제단을 쌓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의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들에게 공로를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제사 드림으로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지금은 전시 상황입니다. 다른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먼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일을 마무리 짓고 승리했을 때 먼저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헌물을 드려야 합니다. 여리고 성과 같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셨다면 나의 공로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아이 성을 점령할 때도 하나님께서 일일이 코치하셔서 아이 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 성을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아이 성과 같은 문제를 차지하게 해주셔서 기쁨을 주셨다면 먼저 주님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문제해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호수아가 에발 산에서 한 제단을 쌓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새 돌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예배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이 시간 먼저 주님 앞에 새 제단의 예배가 드려지는 계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수8: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점령하고 난 후에 에발 산에서 한 제단을 쌓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영적 책임자로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단 쌓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먼저 예배가 우선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여호수아가 왜 에발 산에서 한 제단을 쌓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에발 산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선포하라고 했던 장소입니다.
신11: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모세는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에발 산은 저주가 선포되는 산입니다. 이런 산에 여호수아는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저주를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단입니다. 우리의 모든 저주를 가져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저주를 선포해도 나에게는 저주가 임하지 않습니다.
‘에발’ 히브리어(에발 5858) 에발이라는 뜻이며 민둥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아발) 잎이 없다, 나뭇잎이 벗겨지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저주받은 자들은 민둥산처럼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산에 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나무가 없고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잎이 다 떨어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죽어 있으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주님이 저주하시니 뿌리까지 말라서 죽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영 육으로 말라서 죽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는 것은 나의 저주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단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대신 민둥산처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나뭇잎이 벗겨진 것처럼 십자가에서 모든 옷이 벗겨지시고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이 수치는 내가 에발 산에서 선포된 저주를 주님이 대신 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제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평생 저주의 수치가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원죄와 자 범죄의 수치를 가져가셨습니다.
수8: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는 모세가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여호와께 드릴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럼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의 손이 들어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석공들이 돌을 다듬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후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쇠 연장으로 다듬어진 돌이라면 십자가에서 인간의 원죄와 자 범죄를 담당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쇠 연장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새 돌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을 상징합니다.
‘새 돌’ 히브리어(살렘 8003) 완전한, 안전한, 평화한이며 히브리어(샬람 7999) 성취하다, 갚아주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모든 원죄와 자 범죄를 갚아주셨습니다. 한 번 죽으심으로 영원한 구원의 성취가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고 새 언약의 복음을 내 마음속에 간직함으로 영원한 구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의 돌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에발 산의 저주가 사라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돌이 없으면 하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저주받은 인생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돌을 가지고 있으면 저주가 사라지게 됩니다. 나의 인생에서 저주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시고 받으십니다.
수8: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여호수아는 새 돌에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목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 언약의 돌 위에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율법이나 선지자가 하신 말씀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하게 완전하게 완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여호수아가 새 돌로 만든 제단에 율법의 말씀을 기록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돌 판에 말씀을 새긴 것처럼 새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육의 마음 판에 새겼으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나의 삶이 세상에 전하는 편지가 됩니다.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모든 저주가 떠나간 사람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가 됩니다.
수8: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이 서고 에발 산 앞에 절반이 서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여호수아는 그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이 선포되었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에발 산에서 저주가 선포되어도 그 저주는 새 제단에서 제사 드림으로 저주가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모든 저주는 사라지게 됩니다. 내 인생에 다가올 모든 저주는 이 시간 이후에 주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에 나에게는 저주가 미치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과 사업과 가정의 저주는 더 이상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수8: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여호수아는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저주는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돌이 에발 산의 저주를 모두 가져가셨기 때문입니다.
수8: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여호수아는 모세가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않은 말이 없이 모두 낭독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영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회중’ 히브리어(카할 6951) 집회, 회중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교회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새 언약의 말씀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선포된 것처럼 이 시대 교회에 반드시 선포되어야 합니다. 새 언약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교회에 나온 회중들은 저주를 받고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여자’ 히브리어(이샤 802) 여자, 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정식부인을 말합니다. 여자에게 낭독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상징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교회에는 구원의 확신을 얻고 주님의 신부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히브리어(이샤)입니다.
‘아이’ 히브리어(타프 2945) 어린아이들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경험하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교회에는 나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경험하지 못함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도 계속해서 새 언약의 돌에 기록된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할 때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십자가의 의를 경험하게 되고 구원받게 됩니다.
‘거류민’ 히브리어(게르 1616) 거류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나그네를 의미합니다. 집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와 같은 자들의 신앙을 가진 자들을 의미합니다. 교회도 정착하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고 인생 자체가 나그네와 같아서 쉼을 얻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도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신앙이 정착하게 됩니다. 나그네 신앙에서 정착하는 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에발 산에 제단을 쌓는 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에발 산에서 선포된 모든 저주는 골고다에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나의 모든 저주가 사라졌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에게 올 모든 저주는 이제 없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나의 의는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나에게는 저주가 사라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신앙생활 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