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1장 히브리어 원어성경말씀은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를 배설했는데 많은 고관대작들이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왕은 왕후의 아름다움을 신하들에게 보여주려고 잔치에 참석하라고 와스디에게 통고했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는 왕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잔치에 나가지 않았다. 왕은 화가나서 결국 와스디를 폐위하게 된다.
성 경: [에1:1] 바예히 비메 아하쉬베로쉬 후 아하쉬베로쉬 하몰레크 메호두 비아드 쿠쉬 셰바 비에시림 우메아 미디나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아하수에로의 대연(大宴)]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그리고’의 의미인 접속사 ‘와우’가 있다.이를 근거로 혹자는 본서가 이전에 일어났던 어떤 특정한 사건과 문장상의 연관성을가지고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와에히’는 종종 한 책의시작을 표하는 단순한 도입구로서 나타난다(수 1:1; 삿 1:1; 룻 1:1; 삼상1:1; 삼하 1:1; 겔 1:1; 욘 1:1). 따라서 여기서도 단순한 도입구로 이해함이 타당하다(Edwin Yamauchi, Keil, Schultz). 아하수에로 왕 – 에스라 4:6에서도 언급되는 B.C. 485-464년까지 통치했던 페르시아 왕이었다. 그는 다리오와 고레스의 딸 아토사(Atossa)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 다리오가 왕이 된 후 낳은 아들중에서는 맏이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Xerxes)와 동일 인물이며(Josephus), 단 9: 1의 아하수에로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인도로 구스까지 – 여기의 ‘인도’는 인더스 강 서쪽 지역, 즉 오늘의 파키스탄 지역을 가리키며 인도 반도 지역을 뜻하지는 않는다(Baldwin). 이 지역은 아하수에로왕의 부친 다리오에 의해서 정복되었으나 아하수에로 당대에도 그곳 거민들과의 전쟁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었다(Herodotus vii, 65, 70). 한편,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 지역 곧 나일 강 상류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캄비세스 왕에 의해서 정복되어 다리오와 아하수에로 시대에 이르러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로 정식 편입되었다(Herodotus vii, 9, 65, 69). 아무튼 ‘인도’는 페르시아 영토의 가장 동쪽, ‘구스’는 가장 서쪽이었다.
일백 이십 칠 도(道) –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은 당시 페르시아의 행정 구역이 20구역으로 나누어졌었다고 말한 헤로도투스의 언급에 근거하여 이 ‘일백 이십 칠도’는 그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본적으로 20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소위 ‘왕의 대신’들에 의해 통치되었고(3 :12), 보다 세부적으로는 127도로 구분되어 각 도의 ‘방백’들에 의해 다스려졌다고 이해된다. 물론 이렇게 127개 도로 세분화시킨 데에는 세금 징수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될 것이다(G. Archer).
성 경: [에1:2] 바야밈 하헴 키셰베트 하멜렉크 아하쉬베로쉬 알 키세 말쿠토 아쎄르 비슈샨 하비라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아하수에로의 대연(大宴)]
수산 궁 – ‘수산’은 고대 엘람 지역에 위치했던 페르시아의 수도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페르시아 왕들은 이 ‘수산’에서는 봄과 가을에만 통치를 하였을 뿐이고, 겨을에는 바벨론에서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무(政務)를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산’은 (1) 왕이 일년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었으며, (2) 행정부 대부분의 기관들이 위치했었으며, (3) 왕의 보호를 목적으로 철저히 요새화되었다는 점 등에서 단연 최고의 수도였음이 분명하다.
성 경: [에1:3] 비쉬나트 샬로쉬 리말코 아사 미쉬테 리콜 사라이브 바아바다이브 헬 파라스 우마다이 하파리티밈 비사레 하미디노트 리파나이브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아하수에로의 대연(大宴)]
위에 있은 지 삼 년 –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는 B.C. 458년 12월 23일에 있었다. 그러나 공식적 즉위 년도는 즉위 후 최초로 맞이한 정월이 속한 그 해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즉위 ‘삼 년’은 B.C. 482년이다(Paton). 그때는 애굽에서 반란이 일고 있었던 시점이기도 하다.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이스 정복을 위해 즉위한 이후부터 2년 동안 철저한 계획에 따라 무력을 증강해갔다고 한다. 본절의 잔치는 아마도 전쟁에 돌입하기 앞서 최후 점검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열린 듯하다(Baldwin, Huey, Keil, Schultz). 한편, 고대 사가인 크테시아스(Ctesias)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들은 보통 15,000명 정도가 참석할 수 있는 정도의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여기서 ‘잔치'(미쉬테)는 ‘마시다’를 뜻하는 동사 ‘쉬타’에서 온 단어로서, 다량의 술이 제공되는 큰 ‘연회'(宴會)를 가리킨다(Baldwin).
바사와 메대의 장수…각 도의 귀족…방백 – ‘바사와 메대’라는 독특한 표현은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가리키는 술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사’와 ‘메대’는 페르시아 제국을 구성하던 가장 중요한 두 민족 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메대’는 ‘바사’에 의해 정복되었었다. 하지만 첫째, 두 민족은 동일하게 인구어족(印歐語族)에 속하여 언어나 관습 및 종교 등이 서로 거의 같았으며 둘째, ‘바사’는 ‘제대’의 정치역사적 전통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그 두 민족은 거의 하나라고 할 만했다. 한편, ‘장수’와 ‘귀족’ 그리고 ‘방백’은 앞의 ‘방백’과 ‘신복’이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인지를 보여 준다.
그 중 ‘장수'(헤일)는 2천 명의 창을 가진 병사, 2천의 기병(騎丙). 그리고 1만의 보병 등 총 1만 4천의 병력을 거느렸던 지휘관을 뜻한다(Keil1, Paton, Baldwin). 그리고 ‘귀족'(파르템)은 문자적으로는 ‘으뜸되는 사람’의 뜻을 갖는 페르시아 어원(語源)의 단어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1) 페르시아 전역을 스물로 나눈 행정 구역을 맡아 다스렸던 총독(Paton), (2) 왕의 곁에서 왕에게 필요한 조언을 하는 모사(Baldwin)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첫째, 페르시아 왕들에게는 실제로 조언을 해주던 모사들이 있었다는 성경의 언급이 있으며(스 7:14) 둘째, 이것을 뒷받침이나 하려는 듯 왕의 정무실(政務室) 계단에 모사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양각(陽刻)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된 사실, 그리고 세째, 제국을 스물로 나눈 행정 구역을 다스렸던 총독(satrap)은 광의적으로 이해할 때 ‘방백’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후자가 보다 더 타당성이 있다. 한편, ‘방백'(사르)은 127개로 나눈 행정 구역을 다스렸던 행정관이다.
성 경: [에1:4] 비하리오토 에트 오셰르 카보드 말쿠토 비에트 이카르 티피에레트 게둘라토 야밈 라빔 쉬모님 우미아트 욤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아하수에로의 대연(大宴)]
일백 팔십 일 동안 – 모든 ‘장수’나 ‘귀족’ 그리고 ‘방백’이 이 기간 동안 줄곧 잔치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제국의 각처를 다스리던 ‘방백’이나 ‘장수’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들의 임지(任地)를 떠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당시는 제국 정부에 대한 피정복민들의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는 ‘방백’ 등이 번갈아 가면서 그 잔치에 참여했었다고 본다.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 – 이와 같은 페르시아 제국의 경제적 강성은 여러 고대 저술가들에 의하여 언급된 바있다. 그중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왕이 매년금 14,560달란트를 공물로 받아서 그것으로 커다란 금궤를 만들어 창고에 보관하였다고 했다. 또한 아하수에로 왕은 금과 은으로 씌워진 장막, 금으로 된 긴 의자, 금으로 된 주발과 잔, 그리고 금주전자 등을 스파르타로부터 약탈하여 갖고 있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스퀼루스(Aeschylus)도 페르시아 왕궁의 방들이 금으로 씌워졌다고 말하였다(Paton).
성 경: [에1:5] 우비밀로트 하야밈 하엘레 아사 하멜렉크 리콜 하암 하니미치임 비슈샨 하비라 리미갈돌 비아드 카탄 미쉬테 쉬비아트 야밈 바헤차르 기나트 비탄 하멜렉크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아하수에로의 대연(大宴)]
이 날이 다하매 – 왕이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베풀었던 180일간의 잔치(3,4절)가 끝난 것을 가리킨다.
왕이…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 이것은 180일간의 잔치와는 그 성격상 매우 다르다. 즉, 180일간의 잔치는 중요한 신료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 회의적 성격까지 내포한 것이었으나, 여기의 이 잔치는 서민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았던 순수한 유흥적(遊興的)성격이었던 것이다.
대소 인민 – 신분 고하를 막론한 모든 남자들을 가리킨다(9절).
왕궁 후원 뜰 – 페르시아 왕궁은 요새화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었다(Paton). 그리고 ‘뜰’에 해당되는 공간의 넓이는 약6천 6백평방 미터 정도였었다. 따라서 이 정도 넓이의 ‘후원 뜰’은 대단히 많은 시민들을 위한 잔치를 갖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성 경: [에1:6] 후르 카리파스 우테켈레트 아후즈 비하벨레 부츠 비아리가만 알 길릴레 케세프 비아무데 셰쉬 미토트 자하브 비케세프 알 리치파트 바하트 바셰쉬 비다르 비소하레트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아하수에로의 대연(大宴)]
백색, 녹색, 청색 휘장 – 이러한 ‘휘장’은 잔치 장소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따가운 햇살을 막으려는 목적 때문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180일간의 잔치(4절)가 초봄에 시작됐다고 가정할 경우, 시민들을 위한 7일간의 잔치가 열린 때는 늦여름으로서 여전히 햇살이 따가 왔을 것이다. 한편, ‘백색’과 ‘청색’은 페르시아의 왕들이 특별히 선호하던 제왕색(帝王色)이었다. 또한 ‘휘장'(카르파스)은 헬라어 ‘카르파소스’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무명천을 가리킨다(Schultz).
자색 가는 베줄로…메고 – 상당히 긴 휘장을 땅에까지 늘어뜨려 고정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대리석기둥 – 뜰 중간에 위치했던 궁전의 옆에 별도로 세워진 기둥을 가리킨다. 그런데 ‘대리석'(쉐쉬)은 석회석과 그것의 변성암(變成岩)인 대리석 모두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수산의 폐허를 탐사했던 고고학자들은 페르시아 왕궁의 기둥들이 검푸른 석회석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여기의 ‘대리석’은 차라리 ‘석회석’으로 번역함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이 ‘기둥’은 그 꼭대기에 한 사람이 족히 누울 수있을 만큼 굵었다고 한다(Paton).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 – 여기의 ‘걸상’은 편안히 기대어 앉을수 있었던 긴 의자이다(Rawlinson, 7:8). 이 의자의 골조는 그리이스 등에서 가져온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표면은 금과 은으로 덮혀졌던 것 같다.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 – ‘화반석'(바하트)은 칠십인역에서 ‘가짜 에머랄드’라고 번역했다는 점에서 ‘에머랄드’처럼 생긴 녹색 돌, 즉 공작석 혹은 사문암을 가리키는듯하다(Keil). 그리고 ‘백석'(쉐쉬)은 앞에서 ‘대리석’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운모석'(다르)은 칠십인역에서 ‘진주같은 돌 ‘이라고 번역했다는 점에서, 진주 조개의 껍질 혹은 진주 비슷한 광택과 불규칙한 균열이 있는 진주암(眞珠岩)을 가리키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흑석'(소헤레트)은 방패 같은 무늬가 있는 검은 돌을 뜻할 것이다(Keil).
성 경: [에1:7] 비하쉬코트 비켈레 자하브 비켈림 미켈림 쇼님 비예인 말쿠트 라브 키야드 하멜렉크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아하수에로의 대연(大宴)]
금잔 – 유대 랍비들의 구약 성경 주석인 미드라쉬(Midrash)는 이 ‘금잔’을 금처럼 비싼 수정으로 된 ‘잔’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확정지을 만한 단서는 희박하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이 잔들은 결국 그리이스 군대에게 약탈되었다고 한다.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 잔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디자인되어 만들어졌으며, 이에 따라 무늬나 모양 등에서 서로 달랐다는 뜻이다(Baldwin). 아무튼 이것은 아하수에로 왕의 재력(財力)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문구라 하겠다.
왕의 풍부한 대로…한이 없으며 – 문자적으로는 ‘왕의 손처럼 풍부한’의 뜻으로서 왕의 능력과 풍부를 과시하기에 합당한 만큼의 많은 양을 가리킨다(Schultz, 2:18).
어주(예인 말쿠트) – 문자적으로는 ‘나라의 포도주’의 뜻이다. 추측컨대 이는 왕 자신이 마시기 위해 저장해 놓은 칼리본(Chalybon) 산(産)의 귀한 술이었을 것이다(Schultz, Paton).
성 경: [에1:8] 비하쉬티야 카다트 에인 오네스 키 켄 이사드 하멜렉크 알 콜 라브 베이토 라아쇼트 키라촌 이쉬 바이쉬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아하수에로의 대연(大宴)]
규모가 있어…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 본절을 해석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규모’에 따른다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억지로 하지 않게’ 했다고 함로써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규모’를 어떤 엄격한 법령으로서가 아니라 바사 왕의 일시적인 명령으로 이해하고 그 명령의 내용이 바로 각자의 자유 재량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해석이 보다 원만해진다. 즉, 잔치석 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많이 마시도록 강요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Huey). 한편,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은 대단히 큰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운 뒤 단숨에 들이키는 음주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술 손님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 술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으며, 그 손님은 술 잔에 술을 다시 가득 채운 뒤, 다시 단숨에 마시는 시도를 해야만 했다고 한다.
성 경: [에1:9] 감 바쉬티 하말카 아시타 미쉬테 나쉼 베이트 하말쿠트 아쎄르 라멜렉크 아하쉬베로쉬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왕명을 거역하는 왕후 와스디]
왕후 와스디 – 아하수에로 왕의 여러아내 중 세속사에서 밝혀진 사람은 일곱 모사중의 한 사람이었던 오타네스(Otanes)의 딸 아메스트리스(Amestris)이다. 대개의 성경 학자들은 여기의 이 ‘와스디’가 바로 그 ‘아메스트리스’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추측건대 이 ‘와스디’라는 호칭은 본명이 아니라 다만 그녀의 성품을 나타내주기 위해 사용했던 별칭이었을 것이다. 분명치는 않지만, ‘와스디’는 ‘달콤하다’ 혹은 ‘사랑을 받는’ 이란 뜻이다(Rawlinson, Baldwin).
아하수에로 왕궁 – 수산 궁의 남쪽에 있던 왕후의 처소를 가리키는 것 같다(Rawlinson).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 페르시아의 관습으로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잔치석상에 참여하는 것이 반드시 금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에스더가 왕 및 하만 등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다는 점은 이 사실을 넉넉히 증명해줄 만하다(5:2-8 ;7:1-4). 와스디가 이처럼 남자들과 별도로 잔치를 배설한 까닭은 (1) 남자들의 잔치 분위기는 여성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며, (2) 남자들의 잔치 장소인 ‘후원 뜰'(5절)은 여자들까지 참석하기엔 장소가 협소하였기 때문일 것이다(Baldwin, Paton).
성 경: [에1:10] 바욤 하쉬비이 키토브 레브 하멜렉크 바야인 아마르 리미후만 비지타 하리보나 비기타 바아바기타 제테르 비키리카스 쉬비아트 하사리심 하미샤리팀 에트 페네 하멜렉크 아하쉬베로쉬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왕명을 거역하는 왕후 와스디]
제 칠 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 ‘제 칠 일’은 백성들을 위해 베푼 잔치의 마지막 날이었다(5절). 한편, ‘주흥이 일어나서’는 문자적으로 ‘술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다. 곧 이것은 술을 지나치게 마셔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상실한 상태, 혹은 황홀한 상태에 돌입했었음을 시사한다(삿 16:25; 삼상 25 :36 ;왕상 8 :66 ;잠15: 15).
어전 내시 – ‘내시'(사리스)는 반드시 ‘거세된 환관’만을 의미치 않는다. 때로는 이 단어가 정부의 고위 관리를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다(창 37:36). 그러나 여기서의 ‘내시’는 왕후의 처소에도 출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때, ‘거세된 환관’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들은 고레스 왕 시절이래 결코 적잖은 영향력을 소유했었다(Rawlinson).
무후만 – ‘위대한 훔(Hum)에게 속하는’의 뜻을 갖는 페르시아 이름 ‘메훔반'(Meh-hum-van)을 히브리어로 음역한 것으로 여겨진다(Paton).
비스다 – ‘거세한’의 뜻이 있는 페르시아 이름 ‘비스타'(Bista)의 히브리어 음역인듯 하다(Paton).
하르보나 – ‘화려’ 혹은 ‘광채’를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우바르바우나'(Uvarbauna의 음역일 것이다(Paton).
빅다 – ‘신의 선물’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 ‘바가다타'(Bagadata)의 음역이다(Paton).
아박다 – ‘선생’의 의미인 페르시아 이름 ‘아바기타'(Abagita)의 음역이다(Paton).
세달 – ‘승리자’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사타르’의 음역이다(Paton).
가르가스 – ‘욕심장이’의 뜻인 페르시아 이름 ‘카르카사’의 음역이다(Paton).
일곱사람 – 이처럼 아하수에로 왕이 ‘일곱 사람’을 와스디 왕비에게 보낸 것은, ‘일곱’이라는 숫자가 중근동 세계에서 ‘완전한 수’ 혹은 ‘신성한 수’로 인식되었다는 점에 근거하여, 자신의 와스디에 대한 명령(11절)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단호한 취지를 ‘와스디’에게 암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성 경: [에1:11] 리하비 에트 바쉬티 하말카 리페네 하멜렉크 비케테르 말쿠트 리하리오트 하암밈 비하사림 에트 야피야흐 키 토바트 마리에 히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왕명을 거역하는 왕후 와스디]
왕후의 면류관 – 큼직한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끝이 뾰족한 것이었다고 한다(Rawinson, Keil)
그 아리따움을…보이게 하라 –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모든 이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탁월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같은 명령은 백성들에게 훌륭한 도덕적 귀감이 되어야만 했던 왕의 신분에는 걸맞지 않았다. 일찍이 루디아 왕 칸타울레스는 자신의 아내의 미모를 과시하려는 분별없는 욕망으로 인하여 마침내 왕좌와 생명까지도 상실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었다(Rawlinson). 어떤 유대 문헌은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를 면류관만 쓰고 전라(全裸)로 나오게 했다고 해석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성 경: [에1:12] 바티마엔 하말리카 바쉬티 라보 비데바르 하멜렉크 아쎄르 비야드 하사리심 바이키초프 하멜렉크 메오드 바하마토 바아라 보
주제1: [왕의 잔치와 왕후 와스디의 폐위]
주제2: [왕명을 거역하는 왕후 와스디]
왕후 와스디가…싫어하니 – ‘와스디’의 이 같은 반응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의 하나에 따라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즉, (1) ‘와스디’가 낯선 사람에게는 아내의 얼굴을 보이지 않아야만 한다는 페르시아 관습을 염두에 둔 때문에(Josephus), (2) 와스디가 술취한 손님들 앞에서 왕후로서의 위엄을 손상당할까 염려한 때문에(Keil1,Rawlinson, Schultz), (3) ‘와스디’가 당시 외모에 어떤 흠결이 있었기 때문에(유대 랍비들). (4)’와스디’가 왕으로부터 벌거벗고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Midrash,Targum)등이다. 그러나 첫째, 페르시아의 관습이 여자가 남자들의 잔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반드시 금지하지는 않았다는 사실(5:1-8 ;7:1-4) 둘째, 만일 ‘와스디’에게 외모상의 어떤 흠결이 있었다면 왕이 결코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 넷째, 왕비의 나체를 신하들에게 보이려는 시도는 역사상의 그 어떤 군왕(君王)에게서도 없었다는 사실 넷째,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보통 술주정이 심했다는 사실(Herodotus)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위의 네 가지 이유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왕이 진노하여 – 이러한 반응은 많은 신하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직접 하달한 명령이 먹혀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던 때문이었다.
중심이 불붙는듯하더라 – 이는 문자적으로는 ‘그의 속에서 불이 탔다’의 뜻으로서, 그의 ‘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적 문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