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7장 히브리어 원어성경 설교 말씀은 성전에서 흐르는 생명수 환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에서 흐르는 생명수를 보았다. 이 물은 새 언약의 말씀을 상징한다. 교회의 강단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생명수 환상처럼 복음이 흘러 내려가야 한다.
새 언약의 말씀이 흘러가게 하라(겔47:1-5)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새로운 성전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나니 하나님은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은 구속사 관점으로 보면 육체의 성전을 의미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전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본 성전은 속사람이 거할 수 있는 영적인 성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렸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에 싫증이났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겠다고 하여 하나님 자신이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는 것을 에스겔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 성전은 옛 언약이고 에스겔에게 보여 준 성전은 새 언약을 상징합니다.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을 세우실 것을 에스겔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헤롯 성전을 헐라고 했습니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걸쳐서 지었는데 네가 어떻게 삼 일 동안 지을 수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솔로몬 성전에서 열심히 옛 언약만 붙잡고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것이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결국 무너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을 붙잡고 새 언약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복음적인 신앙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새 언약 아래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구원받은 사람이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율법의 옛 언약 아래에 있기 때문에 속사람이 구원받지 못합니다. 새 언약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에스겔이 본 환상의 성전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겔47: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וַיְשִׁבֵנִי֮ אֶל־פֶּ֣תַח הַבַּיִת֒ וְהִנֵּה־מַ֣יִם יֹצְאִ֗ים מִתַּ֨חַת מִפְתַּ֤ן הַבַּ֨יִת֙ קָדִ֔ימָה כִּֽי־פְנֵ֥י הַבַּ֖יִת קָדִ֑ים וְהַמַּ֣יִם יֹרְדִ֗ים מִתַּ֜חַת מִכֶּ֤תֶף הַבַּ֨יִת֙ הַיְמָנִ֔ית מִנֶּ֖גֶב לַמִּזְבֵּֽחַ׃
바예쉬베니 엘 페타흐 하바이트 베힌네 마임 요체임 미타하트 미페탄 하바이트 카디마 키 페네 하바이트 카딤 베하마임 요르딤 미타하트 미케테프 하바이트 하예마니니트 미네게브 라미즈베아흐
여호와 하나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문에 도착했습니다.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막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성막 문이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문지방’ מִפְתַּ֤ן(미프탄 4670) 문지방, 출발점이며 (페텐 6620) 뱀, 독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 주신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문지방의 원문을 보니까 뱀, 독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람이 뱀에 물리면 죽게 됩니다. 특히 독사에 물리면 빨리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모세를 생각하게 됩니다.
민21:6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하니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냈습니다.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여기에서 불 뱀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뱀의 강력한 독에 죽었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민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했습니다. 불 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산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불 뱀에 물렸다는 것은 원죄의 죄인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사탄에게 미혹되어 원죄에 빠져 모두 죽었습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가 원죄 가운데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죽어 있을 때 하나님은 해답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민21:9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 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불 뱀에게 물린 자가 놋 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아났습니다. 모세는 불 뱀을 만들지 않고 놋 뱀을 만들었습니다. 놋 뱀은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십자가에서 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독이 강했던 불 뱀의 독을 없애버린 분인 예수님입니다. 불 뱀의 독은 원죄의 강력한 독을 상징합니다. 이 원죄의 독에 모든 인간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직접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독성을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주님을 믿는 순간 모든 원죄의 독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의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불 뱀과 같이 독성이 있었던 죽음의 물입니다. 이 물이 생수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독사와 같은 사탄의 머리를 짓밟아 놓았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생수가 되었습니다. 이 새 언약의 생수가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옵니다. 문지방 밑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 불 뱀과 같이 높이 달리셔서 나의 모든 원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믿는 순간 원죄가 사라져 구원받고 살아나게 됩니다.
겔47: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וַיֹּוצִאֵנִי֮ דֶּֽרֶךְ־שַׁ֣עַר צָפֹונָה֒ וַיְסִבֵּ֨נִי֙ דֶּ֣רֶךְ ח֔וּץ אֶל־שַׁ֣עַר הַח֔וּץ דֶּ֖רֶךְ הַפֹּונֶ֣ה קָדִ֑ים וְהִנֵּה־מַ֣יִם מְפַכִּ֔ים מִן־הַכָּתֵ֖ף הַיְמָנִֽית׃
바요치에니 데레크 샤아르 차포나 바예시베니 데레크 후츠 엘 샤아르 하후츠 데레크 하포네 카딤 베힌네 마임 메파킴 민 하카테프 하예마니트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도착했습니다. 에스겔이 보고 있는데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고 있습니다.
‘스며 나오더라’ מְפַכִּ֔ים(메카핌 6379 동사, 피엘, 분사능동, 남성, 복수) 똑똑 떨어지다, 졸졸 흐르다라는 뜻입니다. 에스겔은 동쪽 바깥문에 도착하여 물이 스며 나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이 똑똑 떨어지면서 조금씩 스며 나오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피엘형을 사용함으로 물이 세차게 나오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가 작은 틈새로 스미어들더니 갑자기 둑이 터지는 것처럼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물에 능력과 위력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의 말씀에는 엄청난 파급력이 있습니다.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원죄에 죽어 있는 자들을 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분사능동은 이 물이 조금씩 스며 나오고 있지만 이것은 운동력과 활력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음을 말합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합니다. 새 언약의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이것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새 언약 말씀의 위력과 활력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영원히 죽어 있었는데 살아났습니다. 사탄의 독에 중독되어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죽어 있던 나를 주님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새 언약의 복음으로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에는 엄청난 위력이 있습니다.
겔47: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בְּצֵאת־הָאִ֥ישׁ קָדִ֖ים וְקָ֣ו בְּיָדֹ֑ו וַיָּ֤מָד אֶ֨לֶף֙ בָּֽאַמָּ֔ה וַיַּעֲבִרֵ֥נִי בַמַּ֖יִם מֵ֥י אָפְסָֽיִם׃
베에트 하이쉬 카딤 베카브 베야도 바야마드 엘레프 바암마 바야아비레니 바마임 메 오프사임
에스겔을 인도했던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천 척을 측량한 후에 에스겔에게 그 물을 건너게 하니 물이 발목에 오르고 있습니다.
‘줄을 잡고’ קָ֣ו(카브 6957) 줄, 끈이며 (카바 6960) 소망하다, 사모하다, 바라보다, 모이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천사가 줄을 잡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물의 깊이를 측량하고 있습니다. 물의 깊이를 측량한다는 것은 가뭄에 메마른 곡식들이 물이 없어서 죽어갈 때 물이 있으면 곡식들이 살아나는 것처럼 지금 영혼이 죽어 있는 자들에게 이 물이 흘러갈 때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아날 것인지를 소망하면서 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의 생수를 통해서 수많은 영혼이 살아날 것을 우리는 기대하게 됩니다. 생명의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체들이 모이게 됩니다.
행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초대교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새 언약의 말씀인 복음을 선포했을 때 삼천명 오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전의 생수가 흘러나가니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죽었던 자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난 사람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생명수가 들어가니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게 됩니다. 천사가 물의 깊이를 재기 위해서 줄을 잡고 있듯이 우리도 복음을 잡고 이 복음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주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모이고 생명이 살아날 것인지를 소망해야 합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흘러가고 있는 물이 얼마나 생명을 살릴지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물이 아라바의 척박한 광야를 지나 사해 바다로 흘러 들어가 죽었던 생명체들을 살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복음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 복음의 생수로 얼마나 많은 영혼을 살릴 것인지를 생각하고 소망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겔47: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וַיָּ֣מָד אֶ֔לֶף וַיַּעֲבִרֵ֥נִי בַמַּ֖יִם מַ֣יִם בִּרְכָּ֑יִם וַיָּ֣מָד אֶ֔לֶף וַיַּעֲבִרֵ֖נִי מֵ֥י מָתְנָֽיִם׃
바야마드 엘레프 바야아비레니 바마임 비르카임 바야마드 엘레프 바야아비레니 메 모트나임
천사가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에스겔에게 물을 건너게 합니다.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물을 건너게 하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복음의 능력이 파급력 있게 퍼져나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생수가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작게 시작한 것 같지만 나중에는 온 세계에 퍼져나갈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복음의 사역이 작은 일 같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엄청난 파급력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이런 복음 사역에 쓰임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겔47: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וַיָּ֣מָד אֶ֔לֶף נַ֕חַל אֲשֶׁ֥ר לֹֽא־אוּכַ֖ל לַעֲבֹ֑ר כִּֽי־גָא֤וּ הַמַּ֨יִם֙ מֵ֣י שָׂ֔חוּ נַ֖חַל אֲשֶׁ֥ר לֹֽא־יֵעָבֵֽר׃
바야마드 엘레프 나할 아쎄르 로 우발 라아보르 키 가우 하마임 메 사후 나할 아쎄르 로 예아베르
천사가 다시 천 척을 측량하니 물이 에스겔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며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헤엄칠만한’ שָׂ֔חוּ(사후 7813) 헤엄, 수영이며 (사하 7811) 헤엄치다, 가득차다, 충만시키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너무나 많아서 강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그 물에 헤엄치고 수영을 할 만큼 충만하게 채워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성령이 충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물이 도착하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니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이 좋아합니다. 그럼 우리는 언제 은혜의 물속에서 수영을 치면서 놀 수가 있을까요? 히브리어의 언어유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샤하 7812) 경배하다, 절하다, 섬기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는 단어이며 하나님을 경배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헤엄친다는 단어인 (사하 7811)와는 점하나 차이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새 언약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 성령 하나님께서 예배 시간 내내 은혜의 강물에서 수영하듯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반면에 새 언약 안에 있지 않고 옛 언약 안에 있으면 수영을 하지 못함으로 물이 괴롭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물속으로 가라앉아 죽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새 언약 안에 있기 때문에 복음의 물에서 기쁨으로 수영을 하면서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복음의 물이 싫어집니다. 그 이유는 수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싫으니 예배를 드리면서 결국 가라앉아서 예배가 끝나고 나면 영혼은 숨이 막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배와 수영하는 것은 점 하나 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할 때 은혜의 강물에서 열심히 수영하면서 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합2: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하박국 선지자는 말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수가 적은 것 같지만 시간이 흘러서 복음의 생명수가 세상의 바다를 덮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될 날이 옵니다. 우리는 그날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선포해야 합니다.
히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입니다. 첫 언약 때에 범죄 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입은 자를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옛 언약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새 언약을 통해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기업을 예수님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교회의 강단은 새 언약의 복음만 선포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입술에는 오직 새 언약 일꾼의 소리만 나와야 합니다. 전도할 때도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인간의 의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선포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