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설교 말씀은 베드로의 첫 번째 성령 강림에서 설교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삼천 명이 회개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도 복음을 들을 때 회개가 일어나게 된다.
Ⅲ. 예루살렘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 2:14-36
본문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유대인들 곧 그 조롱했던 자들에게 즉석에서 행했던 설교를 통해 성령의 첫 열매를 보게 된다. 그는 그들이 취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15절). 베드로의 설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3천명이 그날에 회개했는데 베드로의 설교만 기록되어 있다. 전에는 겁에 질려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그가 이제는 용감하게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1. 서론(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14절). 그들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그들을 비웃는 유대인들 앞에 당당히 서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 중에서 더 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창과 검으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가르치도록 부름 받는다. 베드로는 자기가 말한 바를 아주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대인들과 특히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2. 그들의 불경스런 증상에 대한 답변(15)
너희의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추한 것이 아니라(15절). 이제 방언으로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양식 있게 말하고 있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때가 제 3시이니 너희는 그들이 취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제 3시는 우리 시간으로 아침 9시를 이르는데 안식일이나 거룩한 축제일에 유대인들은 이 시간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3. 놀라운 성령강림에 대한 설명(16-36)
그는 이것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즉 말씀의 성취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결과이다.
[1] 그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이다. 그는 요엘서 2:28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비록 성령으로 충만하였지만 그는 성경을 무시하거나 자신을 성경 위에 두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결코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1) 베드로가 인용한 본문(17-21절):여기서 말세, 즉 복음의 때에 대하여 언급되고 있다. 이 복음의 때가 말세로 불리우는 이유는 이때에 복음에 의하여 인간 가운데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며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의 마지막 섭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 날은 예언되었고 약속되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날을 대망하여 놀라지 말라. 그 날을 기다리며 영접하라”는 뜻이다. 이 사도는 본문 전체를 인용하고 있는데 온전한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여기서 예언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①하늘로부터 오는 성령의 은사가 전에 없이 풍성하고 고아범위해지리라는 것이다. 이제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육체에게,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부어질 것이다. 유대학자들은 성령은 현자와 부자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규정에 제한 받지 않으신다.
②성령은 그들 속에서 예언의 성령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 능력은 성의 구별 없이 주어져서 아들이나 딸이나 모두 예언하게 된다. 또한 나이의 구별 없이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18절). 즉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그의 남종과 여종으로 부르신다. 딸(17절)과 여종(18절)에 대한 언급은 남자와 똑같이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받았던 여성들을 생각하게 한다(1:14).
③그들이 예언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유대 나라에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니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에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복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 후 4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파괴가 여기서는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로 불리워진다. 그와 같은 황폐는 전에도 이후에도, 어느 곳,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다. 그것은 주님의 날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백성들에게 복수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심판의 날이었으며 영화로운 날이었다.
유대인의 멸망은 곧 기독교인의 구원이었다. 둘째, 가공할만한 파멸의 전조가 예언되고 있다.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20절).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 서문’에서 전쟁의 전조들, 즉 무서운 천둥과 번개와 지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불타는 혜성이 일년간이나 그 도시의 하늘에 떠 있어서 새빨간 검이 도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불과 연기는 문자 그대로 도시와 마을, 회당, 그리고 마침내는 성전까지 불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셋째, 주의 백성은 특별히 보호될 것이라는 것이 약속되어 잇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1절). 로마의 공격으로 폐허가 될 때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구원받은 남은 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른다. 그들의 강한 성은 그들이 부르는 주님의 이름인 것이다.
2) 이 예언을 당시의 사건에 적용시킴: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16절). 이것은 곧 모든 육체에 오리라던 성령의 역사이며 우리는 다른 것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 은총의 성령, 곧 옹호자 혹은 위로자는 약속에 따라 주어졌으며 동일한 약속에 따라 땅 끝까지 교회와 더불어 계속될 것이다.
[2] 그것은 그리스도의 선물이었다. 베드로는 이 성령의 은사로부터 예수에 대한 설교로 나아갔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22절).
(1) 22절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요약한 것이다. 베드로는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고 있다.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는 인간에게 비난받고 정죄당한 분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증거 하신 분임이 틀림없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분이었다. 너희 자신이 그가 어떻게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는지를 증거해 주는 증인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은 바로 하나님이 그를 통해 하신 일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런 능력을 행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기적 중에서 베드로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보라. 기적이 일어난 사실 자체는 부정될 수가 없다. 이런 일들은 너희 자신이 아는 바대로 너희 가운데서 일어났다. 너희들은 그의 기적의 목격자이다. 거기서 얻어지는 결론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세주라고 선포하심으로써 그를 증거 하셨다.
(2) 그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기적이었다. 곧 하나님의 증거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인정된 사람이 바로 그들에게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난과 죽음, 이 두 가지 신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23절). 먼저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서 놀라운 은총의 행위이며 지혜로운 행위였다.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 내어 주셨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하나님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예지로서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당신의 뜻대로 되어지이다’ 또한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들이 행한 일로서 몹시 죄악스럽고 어리석은 행위였다. 그것은 그들의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행위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사악한 손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때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외쳤던 사람들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베드로는 그들의 믿음과 회개를 더욱 효과적으로 촉구하기 위하여 특별히 그들에게 십자가 사건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3) 부활에 대해서 대해 증거한다(24절). 그를 죽음에 내어 놓으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그를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셨다.
①베드로는 그의 부활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4절). 그가 죽으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이러한 영혼의 고통과 슬픔에서 아버지는 그를 풀어 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육체가 부활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빛으로 인하여 갇히시고 죽음의 속박을 받게 되셨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 속에 생명을 갖고 죽음의 왕을 정복했기 때문에 죽음의 세력에 억류당하지 않는다.
②베드로는 그의 부활의 진리를 증거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2절). 그들이 성령의 강림을 통해 권능을 받은 것은 그들로 하여금 유능하고 신실하며 용기 있는 증인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③베드로는 그것이 성경말씀의 성취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윗이 말한 대로 그는 죽음과 무덤에 사로잡혀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구약 본문을 자세히 인용하였다(25-28절).
㉠우리 주 예수는 모든 것을 그의 아버지께 돌렸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25절). 그는 그의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에 상당히 기여함을 아셨기 때문에 그 자신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목표로서 두었다.
㉡그는 아버지의 현존과 능력을 확신했다. 나로 동요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 도다(25절). 하나님이 우리의 우편에 계시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사역을 수행하셨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25,26절). 그의 사역의 결과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 변함없는 기쁨이 되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그 계획에 부응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그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그의 고난과 죽음은 행복한 결과를 낳는다.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6,27절). 그의 소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혼과 육체가 계속 분리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27절). 둘째, 육체가 무덤 속에 있게 되는 것은 잠시 동안뿐이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7절). 그는 죽어야만 하지만 결코 썩음을 당하지는 않는다. 셋째, 그의 고난과 죽음은 축복 받은 영원불멸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것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그로 하여금 이 길을 세상에 알리고 이 길을 열게 하셨다. 넷째, 그의 모든 슬픔과 고난은 완전한 복락 안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그의 앞에 놓인 대가는 하나님의 지지로 인한 기쁨, 곧 충만한 기쁨이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기쁨이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맛보게 될 기쁨인 것이다. 그 안에서 그들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이제 베드로가 이상의 본문에 대해 주석한 것을 보자. 그는 인간과 형제라는 제목으로 그들에게 설교했다.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29절). 여기에서 다윗은 그 자신에 관하여가 아니라 단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 자신에 대하여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이 썩음을 당치 않으리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가 썩음을 당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확실히 한 예언자로서 메시야를 염두에 두고 말했던 것이다. 다윗은 그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位)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30절). 우리 주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눅 1:32) 성령에 따라 그리고 그의 신성에 의해 그는 다윗의 아들이 아니라 다윗의 주가 되셨다. ‘그의 영혼이 분리되지 않겠고 그의 육체가 썩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다윗의 말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31절).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시 사셨으니 ‘우리가 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라’ 본문에는 그의 승천에 관해서도 약간 언급되어 있다. 다윗은 죽었다가 부활하지도 않았고 하늘에 올라가지도 못하였다(34절). 베드로는 더 나아가 다른 시편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다른 사람 즉 그의 주가 되신 다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시 110:1).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35절).
(4) 이 과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시킨다.
①이것은 그 당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주는 의미를 설명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어떤 일이냐’하고 물었다(12절).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절). 성령의 은사는 이미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이것은 모든 남의 자에게 주신 약속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거룩한 사랑의 언약되어 있다.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것은 단지 위대한 일의 전조에 불과하다.”
②이것은 예수께서 참 메시야이며 구세주라는 사실은 증명해 준다. 이것으로 베드로는 설교를 끝낸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받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절). 사도들은 예수께서 부화하시기 전에는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17:9).
그러나 이제는 그 사실을 선포해야만 한다.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가능성 있는 것이 아니라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그들로 그것을 확실히 알게 하라. 첫째 하나님은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던 바로 그 분을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를 영화롭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가했던 경멸은 오히려 그의 영광을 빛내 주었다. 둘째, 하나님은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삼기까지 영화롭게 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던 바로 그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것이 복음의 위대한 진리이다.
Ⅳ. 베드로가 한 설교의 효과 2:37-41
우리는 지금까지 성령이 복음전도자들에게 미친 놀라운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성령이 복음을 듣는 이들에게 내리신 축복된 성령의 열매를 살펴볼 것이다. 이 신성한 메시지가 처음으로 전파되자 이 메시지 속에는 신의 능력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본문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려고 모여들었던 사람들로 풍성히 거두어들인 첫 열매들을 보게 된다.
1. 그들의 질문(37)
그들은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37절). 그들은 설교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마음이 완고한 자들에게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낫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을 그들의 사악한 손에 책임지웠고 그것은 그들을 격분케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도 명백하고 성경에 기초를 둔 설교를 들었을 때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1] 그 설교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저희가 … 마음에 찔려(37절). 베드로는 그들의 양심을 일깨웠고 그들의 마음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죄인들은 그들의 눈이 열릴 때 죄로 인하여 마음이 찔릴 수밖에 없다.
[2] 그 설교는 그들에게 의문을 던져 주었다.
(1) 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질문을 털어놓았다. 사도들로부터 그들은 확신을 얻고 따라서 그들로부터 조언받고 위로 받기를 바랐다. 그들은 베드로가 그들을 불렀던 대로 사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른다(29절). 그것은 우정과 사랑의 표현이다. 목회자는 영적인 의사이다. 그리고 타인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처럼 생각하는 목회자들과 마치 형제와 같이 자유롭고 친밀하게 지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2) 그들은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물었다. 첫째,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입장에 선 사람처럼 말했다. 우리가 못 박았던 그 예수가 주이시며 그리스도이신가? 그렇다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우리는 어떻게 될까? 자비를 구하는 것 외엔 아무 도리가 없다. 우리가 영원히 죽게 될 위험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되는 바로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살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자기들에게 제시된 것은 무엇이나 즉시 행할 수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죄를 깨닫게 된 사람들은 평화와 용서에 이르는 길을 기꺼이 알고자 한다.
2. 베드로의 답변(38,39)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그들에게 그들이 꼭 해야 할 것을 간단하게 지시했다(38,39절). 확신을 얻은 죄인들은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들의 경우가 비록 비극적이긴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며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1] 본문에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이 해야 할 과정을 설명한다. 회개하여(38절). 이것은 배가 난파한 후에 널빤지를 얻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께서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의무였으며, “회개하라, 회개하라, 너희 마음과 너희 길을 돌이키라”고 지금도 외쳐지고 있다.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38절).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굳게 믿고,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며, 불신앙을 버려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예수의 이름을 믿고 그가 선조들에게 약속되었던 그리스도이며 메시야라는 것을 믿으라. 그들은 사죄함을 받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이 말씀은 그들 개개인에게 부과되었다. 너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하더라도 회개하고 믿으면 세례를 받을 수 있다.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은총을 충분하며 너희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은총은 각자에게 알맞게 주어질 것이다.
[2] 베드로는 그들에게 결단할 용기를 준다.
(1) 죄 사함을 얻으라(38절). 너희 죄를 고백하라. 그러면 너희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러면 진리 안에서 너희가 의롭다 여김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목적하라 그리고 그리스도께 그것을 구하면 너희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2)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38절). 누구든지 죄 사함을 얻은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 (3)너희 자녀들도 계약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죄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는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39절).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 자녀들은 어떻게 되는가? 버림을 받겠는가? 우리와 함께 구원을 받게 되는가?”하고 질문하는 것이 당연하다.
“구원을 받는다”고 베드로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지금부터 영원히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4)”그 약속은 지금은 너희 자녀에게만 미치지만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 축복은 모든 먼데 사람들을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이 보편성에 한가지 제한이 엇붙여져야 되는데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각국의 개개인들에게만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부르심을 먼 데 잇는 사람들에게까지 비치게 하실 수 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3. 주의 사항(38-40)
이러한 가르침에는 유용한 경고가 뒤따른다. 여러 말로 확증하며(40절). 그는 많은 내용을 간결하게 말했지만(38,39절),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말씀을 들었을 때는 간절하게 더 듣고자 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그는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였다. 너희 자신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힘쓰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와 함께 죄 가운데 있던 자들이 멸망할 때 너희는 그들과 같이 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 말라.
이 패역한 세대에서 너희를 구하라.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이 받을 재앙을 피하라. 사악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그들로부터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들이 우리를 몰아세운다면 격류에 떠내려가는 위험보다는 격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고통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친 사람들은 사악한 자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림으로써 자신들의 성실성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4. 설교의 결과(41)
그것은 상당한 성공이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임재 하였고 그로 인하여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격한 자들이었으나 말씀이 가르침을 듣고 변화되었다. 그들은 말씀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환영하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들은 기쁘게 말씀을 받아들였다. 헤롯은 말씀을 기쁘게 듣기만 했으나 이들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설립하신 거룩한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 중에 들게 되었다.
기독교인의 계약을 받아들인 사람은 기독교인의 세례도 받아들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두 입으로는 말씀을 가르치고 손으로는 세례를 주었다. 왜냐하면 곡식을 거두기 위해 너무 바쁠 때였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삼천 명을 회개시킨 것은 떡 몇 조각으로 사오천 명을 먹인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었다. 삼천명이 그들에게 더해졌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백성을 우리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Ⅴ. 초대 교회 교인들의 경건과 사랑 2:42-47
이 절에서 우리는 초대교회의 역사,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이나 가장 순결무구한 모습의 교회를 보게 된다.
1. 성례의 준수
그들은 거룩한 성례를 지켰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기 위해 지정하시고 약속하신 모든 방법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1]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계속 열심히 참가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자기의 이름을 그리스도에게 드린 사람은 그의 말씀을 경청해야만 한다.
[2] 그들은 성도의 교제를 계속하였다. 서로 교제하며(42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46절). 그들은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다. 제자가 한 사람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동류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였는지 살펴보자. 그들은 예배를 통하여 친교를 나누었다. 그들은 성전에서 만났다. 거기서 그들의 집회를 가졌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연합은 우리가 서로서로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성전에 있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일과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모였다. 그들은 서로 불화하지 않았으며 그들 사이에는 거룩한 사랑만이 있었다.
[3] 그들은 자주 모여서 성만찬을 거행했다. 떡을 떼며(43절). 그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떡을 떼었다. 그들은 가정집에서 그 예식을 집행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작은 회당 혹은 가정 교회를 순방하였고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모인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성찬식을 행하였다.
[4] 그들은 계속 기도하였다. 성령이 임재한 후에도 그들은 그전처럼 계속 기도했다. 왜냐하면 기도가 영원한 찬양 속에 흡수되기까지는 아무 것도 기도를 대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그들은 감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즉 날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다(47절). 이것은 기도에 있어 필수적인 내용이며 결코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2. 성도의 교제
그들은 거룩한 예식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연합하였다.
[1] 그들은 기독교인의 교제를 위해 자주 만났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44절). 그들은 함께 모여서 그들 상호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증대시켰다.
[2]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또한 서로 구하기만 하면 기꺼이 돕고자 했다. 그들은 형제애의 원리에 따라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3] 그들은 아주 명랑했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46절). 그들은 인간의 식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식탁이 주는 위로를 받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그들의 마음을 거룩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하였다. 그리스도인만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기쁜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공동식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웃에게 관대하게 대하도록 해주었다. 그들은 순전한 마음 즉 관대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한 조각이라도 혼자 먹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였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은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하며 인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4] 그들은 자선기금을 모았다(45절). 그들은 재산과 소요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것은 재산을 없앤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을 없앤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자의 신실함을 시험해 보기 위해 ‘너의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고 하신 명령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적인 구속력을 갖는 법률을 만들기 위한 선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특수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5:4)하고 말한 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은 이것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형제들에 대한 사랑,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기독교를 발전시키려는 열정, 유아상태에 있는 교회에 대한 보살핌 등은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대로 봉헌하면 된다.
3. 기적과 표적
하나님은 그들을 소유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표적을 보이셨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3절).
그러나 그들에게 기적을 행할 힘을 주셨던 것이 주께서 그들에게 행하셨던 일의 전부는 아니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그들의 입 속에 있는 말씀이 기적을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력을 축복하셨다.
4. 결과
사람들은 그것으로 감화를 받았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43절). 그들은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풍부한 영적 은사를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마음으로 숭배하였다. 사람마다 그들의 경외스러운 가르침과 삶을 보고 감화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호의를 가졌다. 그들을 경멸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들에게 친절했다. 그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본문에서 그들이 온 백성의 칭송을 받은 것으로 볼 때,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것은 제사장들의 술책에 의해 강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사람들은 본래의 마음과 정신으로 되돌아왔다. 꾸밈없는 경건과 자애는 존경을 받을 것이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거꾸러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왔으며 그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