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2장 은혜로운 말씀은 제사장들과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대해서 말씀한다. 제사장들이 타락하니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타락할 수밖에 없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죄를 짓고 있다. 우리도 예수님만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따라서 살면 안 된다.
Ⅰ. 정도를 벗어난 제사장직 2:1-9
앞 장은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말 1:6)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장들에게 말한 것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이 가져온 것을 드렸을 뿐이라고 변명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보다 나은 교훈을 베풀었더라면, 그 백성들은 그만큼 더 나은 제물들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허물이 제사장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1절).
(1) 하나님께서 거룩한 지파 곧 그가 임무를 주신 지파와 맺으신 언약이 열거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4절). 이는 그 언약을 확고히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때 레위의 자손들(특히 아론의 자손들)로 알게 할 것은 ‘하나님이 레위와 맺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그들에게 주심으로써 그를 경외하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불리워진 것은 그 언약으로 사람들의 영혼에 생명과 평강을 가져다 주는 신앙이 유지되게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사장에 대한 이 언약은 영적인 제사장들인 모든 믿는 자들과 맺은 은혜의 언약에도 해당된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영원한 평강과 영원한 생명, 그리고 이 세상 및 오는 세상 속에서의 모든 행복을 보장해 준다. 이 언약은 모든 레위 지파 사람들이 다른 지파들로부터 구별되면서 맺어졌다. 생명과 평강의 이 큰 축복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곧 레위에게, 아론에게, 그리고 비느하스에게 주신 언약 속에서 계속되었고, 하나님은 자신의 이스라엘을 위한 용도라는 잇점으로 그들에게 일을 맡기셨다. 혹자는 5절을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주신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고 레위인들이 그 언약을 받기 위한 조건을 설명하는 것으로 본다.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이 결과로 그들 곧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들’은 그 생명과 평가의 언약의 사자들이 되었고, 언약의 중재자가 아닌 단지 사자 혹은 대리자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강의 조건을 다루도록 쓰임을 받게 되었다. 제사장들은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입’이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7절). 제사장들은 그 지식을 백성들에게 감추지 말고 그들을 위해 지켜야 한다. 성직자들은 지식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단지 지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인 그 제사장들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2) 제사장의 직무에 있어서 수많은 전임자들의 충성과 열심은, 그들이 그런 존경할 만한 조상들보다 더 퇴보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언급되어졌다. 여러 성경 가운데서 선한 제사장(6절)은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었고, 또 담대했다.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이는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진리는 법이요, 명령을 내리는 능력을 자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로써 다스리신다.
그는 ‘하나님 앞에 행하도록’ 택함을 받은 제사장 같이 사셨다(삼상 2:30). 그는 평강과 ‘공평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하셨다. ‘그는 많은 사람을 불의에서 돌이키셨고,’ 하나님은 놀라운 결과로 그의 진력에 보답하셨다. 그는 많은 영혼이 사망에서 구원되도록 도우셨다. 이전에 그를 알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다. 제사장이 바르게 될 때에야 많은 사람이 바르게 될 것이다.
(3) 언약을 위반한 제사장들에게 격한 책망이 내린다. 당시에 많은 부패한 것들이 유대인들의 교회로 몰래 들어왔는데, 잡혼, 이방인을 하나님의 집에 들어오도록 용납하는 것, 그리고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 등 모두 제사장들이 부주의하고 신실치 못하였기 때문에 들어왔다.
1) 그들은 그 규례를 범했다.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9절). 그들 자신도 그 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며, 다른 이들이 그것들을 지키도록 해야 할 그들의 본분도 행하지 않았다.
2) 그들은 백성들의 신임을 저버렸다.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그들은 저들의 직무를, 마치 그것이 다만 그들의 배를 채우고 위대해지기 위해서 계획된 것처럼 관리학 있었을 뿐,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영혼의 이익을 위해서 행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백성들의 신뢰를 저버린 또다른 예는 그들이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한 것'(9절)이다. 율법을 행할 때에 그들은 자기들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굴복하여 그들을 용인하였다.
3) 그들은 그들이 구원을 받도록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의 영혼에 악영향을 끼쳤다. 너희는…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4)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로 책망받을 때, 그들은 그것을 듣지 않으려 하였다.
(4) 하나님께서 이 제사장들에게 심판을 내리셨다. 그들은 안위를 잃었다(2절). 너희의 복을…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그들은 선을 행함으로 만족하게 되는 그들의 일에 위로를 가지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백성들의 신용마저 잃었다(9절).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도를 버리고 레위의 언약을 파했을 때, 그들은 그것에 의해 그들 스스로 천해졌을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눈에서조차 비열해졌다.
(5) 그들에게 진노의 판결이 내려졌다(2,3절). 그러나 그것은 조건부이다. 너희가 만일 마음에 두지…아니하면. 이 말씀 속에는 “만일 너희가 마음에 둔다면 하나님의 노가 지나가 버릴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릴 것이니 너희 스스로 복을 받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복을 주지도 못할 것이라. 이제까지의 너희의 풍부함은 너희에게 재앙이 될 것이고, 너희는 너희 자손에게 재앙일 될 것이라.” 땅의 결실도 그들에게 더 이상 복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너희가 심은 낟알은 땅 속에서 썩을 것이라.” 또한 그것은 그들이 선포한 말씀의 씨앗으로도 이해될 것이다. “더이상 헛된 헌물을 가져오지 말라. 너희의 분향은 내게 가증스러운 것이니라.”
Ⅱ. 잡혼과 이혼 2:10-17
부패한 행동은 참으로 부패한 행동 원리의 결과요 산물이다. 본 적들에서 우리는 서로 거짓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거짓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1) 일반적으로, 그들은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고’ 있었다(10절). 자기의 하나님에게 거짓말하는 자가 그 친구에게 진실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이 여기서 정죄받고 있는 두 가지는 이방 나라들의 여자들을 취한 것과 그들이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 취한 아내들을 학대하고 내버린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둘 다 그들이 거룩한 언약을 어긴 것이었다. 그들은 그 언약으로 명백하게 금지한(신 7:3) 이방 부녀자들과 결혼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조건, 곧 이방인과 섞이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선을 행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것은 그들의 선조들과 맺은 언약이었고, 그 민족을 통합시킨 대헌장이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옳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그의 자손’이다. 이것은 여기서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 “한 아버지, 곧 아브라함이나 야곱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지 않는가?” 그들이 그들 스스로 “우리는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자만에 빠졌던 것이다.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한 백성을 이루게 하셨으며 우리들로써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생명을 넣으사 다른 민족들과 구별하신 것이 아니냐? 따라서 그것이 우리도 우리의 인격의 존엄을 어쩔 수 없이 유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들은 인접하고 있는 나라들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졌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성물'(렘 2:3)이었으나 그들은 이방 여자들과 결혼함으로써 그 거룩함을 더럽혔고, 그 영예를 티끌 속에 던져 버렸다. 유다는…이방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11절).
그 해로움은 그 여자가 이방 나라의 딸이었다는 것보다 이방신의 딸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셈하신다(12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여호와께서…끊어 버리시리라. 이 일이란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다. 사실상 그는 거룩한 나라로부터 끊어져 버렸고, 하나님은 실제로 그를 끊어 버리시되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끊어 버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을 그의 나라에 속한 자들이라고 인정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도, 만일 그가 이방 여인과 결혼한다면(우리가 에스라 10:18에서 많은 제사장들이 그러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은 것처럼), 하나님의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류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제정하신 결혼 언약을 경멸함으로 그들이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 취한 아내들을 학대하고 내버렸던 것이다(말 2:13).
그들은 자기들의 아내에게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실정을 다른 어느 사람에게도 감히 알리지 못한 그 아내들은 하나님께 호소하였고,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였다.’ 우리가 섬기는 그 선한 주님은 그의 단을 눈물로 가리우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노래들로 꾸미실 것이다. 배우자들이 왜 거룩한 사랑과 기쁨 속에서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주어진 이유는 바로 ‘그들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위해서이다(벧전 3:7).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아내들을 불실하게 다루었다(14-16절). 그들은 아내들에게 그들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단지 그들의 아내에게만 합당한 애정의 나눔을 첩들에게서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내들에게 이혼 증서를 주어 인연을 끊어 버렸고 내쫓아 버렸다.
이 모든 것에서 ‘아내들은 그들의 옷으로 학대를 가려야 했다.’ 그들은 자기의 아내들을 학대했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체했다.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여호와께서는 너와 그녀 사이의 결혼 언약에 증거자가 되셨느니라.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께 너의 신실과 충실에 간하여 호소하였기 때문이니라. 그녀는 너의 아내, 너의 것, 너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며, 세상에서 네게 있는 모든 친척들 중 너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네가 그 사람에게 굳게 결합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는 맺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녀는 너의 어려서의 아내로 너의 애정의 가장 강렬하던 시기에 네 사랑을 받던 사람이니라.
너의 젊은 시절 한때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그 정도 나이가 들어 경멸하거나 싫어하지 말라. 그녀는 너의 동반자로서 오랫 동안 너의 염려와 슬픔과 기쁨을 너와 더불어 나누어 온 자니라.” 그 아내는 남편에게 한 사람의 종이 아니라 동반자로서 간주된다. “그녀는 너의 언약의 아내로, 그녀가 신실을 지킬 때 너는 그녀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며, 그것이 생명의 언약인고로 너는 그녀를 떠나 방탕해서는 안되느니라.” 남자와 그 아내는 그들의 생애의 끝까지 사랑과 평화 안에서 함께 하여야 하고, 서로간에 다툼이나 갈라섬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그들을 함께 묶으셨다(15절). 여호와는…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곧 한 사람 아담을 위해 한 사람 하와를 지으셨으니, 아담은 결코 ‘그녀가 다른 사람으로 투기케 말아야’ 하며(레 18:18),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리를 양보하도록 그녀를 내버려서도 안된다. 아담은 한 돕는 자와 어울리도록 계획되었으므로 한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만일 그가 그런 자를 보다 더 많이 구했더러면, 그는 그 돕는 자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무엇 때문에 한 남자를 위해 한 여자만을 취했는가? 그것은 ‘경건한 자손, 곧 하나님의 자손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자손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나야 하며, ‘각 남자는 그 자신의 아내를 갖되’ 율법에 따라(고전 7:2), 단 한 사람만을 취하여야 한다. 그들은 순결하고 거룩한 사랑 안에서 살아야 했으며, 하나님의 규례인 거룩한 결혼 안에서 태어나는 어린 아이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자손으로 ㅁ나들어야 했고, 잔인한 짐승들같게 해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은 ‘그가 짝지어 주신 것’을 나누기에 힘쓰는 자를 몹시 불쾌해 하신다(16절). 이 모든 점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가 추론되었다(15절).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위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이 말은 16절에서 다시 반복된다.
(2) 이 모든 부패한 행실을 낳게 한 그들의 행동 원리들은 얼마나 부패했는가! 그것의 근원을 추적해 보라(17절).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자신들의 부패하고 사악한 행실들로 그들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조차도 싫증나는 것이다. 그들은 그가 거룩한 하나님이 되심을 부정했고, 뻔뻔스럽게도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유도 없이 죄인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번영한다는 데서 끌어낸 사악한 결론이다(참조. 말 3:15).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일반적으로 묘사되어 온 것처럼 그분이 그리 엄하지 않으신 분이라고 여기고서 하나님을 ‘대체적으로 그들 자신과 같은 한 분’이라고 말했다.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우리는 우리가 기뻐하는 것을 행할 따름이라. 그는 우리를 보시지도 않으며, 우리를 존중하시지도 않는도다”고 그들은 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