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예수님 말씀은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유해 주셨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자기들의 병을 치유 받기를 원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해 주고 갈릴리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전도 여행을 떠났다.
Ⅳ. 귀신을 쫓아내심 1:23-28
그리스도는 처음 복음을 전할 때마다 자신의 교훈을 확증하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셨다.
1.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로부터 귀신을 내어쫓는 그리스도(23-26)
회당에 더러운 귀신이 있어(23절). 그 귀신은 사람을 사로잡아 제 뜻대로 다루었다. 이 사람이 회당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거나 병고침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1) 더러운 귀신이 그리스도를 보고 나타낸 격정 : 그 귀신은 그리스도 앞에서 고민에 쌓인 자처럼 소리질렀다. 24절에 의하면 그 귀신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최후를 아는 자로서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귀신은 다음과 같이 행동한다. (1) 그 귀신은 그리스도를 나사렛 예수로 부른다. 아마도 그리스도를 나사렛 예수로 부른 것은 그 귀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2) 그러나 그 귀신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를 알기만 하고 그를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마귀와 다를 바 없다. (3) 그 귀신은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말하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소서 당신이 우리를 꾸짖으시면 우리는 파멸하나이다. 당신은 우리를 멸할 수 있나이다”라고 했다. (4)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로부터 구원받을 가망이 없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파멸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더러운 귀신에게서 얻은 승리 : 사단이 아무리 “우리를 내버려 두소서”라고 간구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사단의 권세가 깨어지고 불쌍한 사람이 구제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1) 예수께서 귀신에게 명하셨다. 그는 말씀을 가르칠 때처럼 권세를 가지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시대 ‘잠잠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는 더러운 귀신이 소리지를 때 뿐만 아니라 아첨할 때에도 그에게 재갈을 물리신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는 그 귀신을 병든 자로부터 나오게 한다. (2) 그리스도의 명령을 피할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더러운 귀신은 복종하고 만다(26절). 그리하여 그 귀신은 그 사람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했다. 귀신은 그리스도를 건드리지 못하자 격분하여 이 불쌍한 사람을 심하게 어지럽혀 놓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은혜를 베풀어 사단의 손에서 불쌍한 영혼을 구해낼 때 그 영혼은 심한 동요와 혼동을 받게 된다. 결국 그 귀신은 구경꾼들을 놀라게 하여 그들이 자기를 두려워 하도록 큰 소리를 질렀다.
2. 귀신 쫓아내는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받은 인상(27, 28)
(1) 이 기적을 본 사람들은 다 놀랐다고 기록되어 있듯이 모두 놀라고 말았다. 그들이 이 일로 놀라 스스로 생각하여 서로에게 묻기를 ‘이는 어찜이뇨 권세있는 새 교훈이로다'(27절)라고 했다. 유대의 귀신 추방자들은 악령을 몰아내기 위하여 주문과 기원으로 가장했지만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은 전혀 달랐다. 그리스도는 권세를 가지고 귀신들에게 명했던 것이다. 확실히 악령까지도 다스리는 분을 친구로 삼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2)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29절)고 기록되어 있듯이 이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의 명성은 그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높아졌다. 이 소문은 곧 모든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뜻이 덧붙여져 ‘이것이 어찜이뇨 새 교훈이 아니냐’고 묻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로서 온 선생으로 널리 인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는 자기를 예고했던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지금 자신의 길을 직접 준비했던 것이다.
Ⅴ.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는 예수님 1:29-39
여기서 다룰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칠 때 행하신 기적(29-31)
(1) 그리스도가 기적을 행하여 그 명성이 이미 온 지역에 퍼졌으나 그는 큰 명성을 얻었다고 편히 지내려는 사람들처럼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계속해서 선을 행하셨다. 평판이 좋은 사람들도 그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주의하며 부지런해야 한다.
(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세로 말씀을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신 회당에서 나온 뒤에도 자기를 섬기던 가난한 어부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3)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이는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어부가 베풀 수 있었던 식사에 초대받으신 것 같다. 그런데도 그리스도는 그 초대를 수락하셨던 것이다.
(4) 그리스도는 병으로 누워 있던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셨다. 그리스도가 가신 곳마다 선을 행하신 것으로 보아, 분명 그리스도는 베드로의 초대에 충분히 보답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녀의 병을 고쳐준 손으로 기운도 나게 하여, 그 여자는 저희에게 수종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치유 방법은 병자를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켜 활동하기에 적합하도록 고치는 것이다.
2. 병을 고치고 마귀를 추방한 그리스도의 행적(32-34)
이 일은 안식일 저녁 해질 때 일어났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병든 자들을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감히 데려오지 못한 것 같다.
(1) 병든 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실업수당을 받기 위하여 늘어선 거지들처럼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33절)고 기록되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를 고친 일로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좋은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찾도록 자극한다. 회당은 물론 개인 가정에도 많은 무리가 그리스도에게로 몰려 왔는데 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제자들과 병든 자들이 있었다.
(2) 예수는 너무도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의원이었기에 아무리 많은 병든 자를 데려 와도 그는 그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그리스도는 몇몇 특수한 병에 들린 사람들만 고친 것이 아니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특별히 회당에서 행한 그 기적을 그날 밤 한 집에서 되풀이하셨다.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34절).
3. 은밀한 기도를 하러 물러나시는 그리스도(36)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은밀한 기도의 본보기를 보여 주시기 위하여 홀로 기도하셨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기도하셨던 것과 동시에 인간의 입장으로서도 기도하셨다. 그는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홀로 지낼 시간을 구했다.
(1) 그리스도가 기도하신 때 : (1) 그리스도가 기도한 때는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새벽이었다. 우리 역시 안식일을 제외한 날에도 매일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야 한다. 이 새벽은 한 주일의 첫 새벽이었으며 그리스도는 훗날 그가 무덤에서 일찍 부활한 것으로 말미암아 이 첫 새벽을 거룩하고 특별한 날로 정하셨다. (2) 그리스도가 기도한 때는 ‘새벽 오히려 미명'(35절)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때 그리스도는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가장 신선하고 생동적일 때 경건한 훈련을 위하여 시간을 내어야 한다.
(2) 그리스도가 기도한 곳 : 그리스도는 ‘한적한 곳으로 가사'(35절) 거기서 기도하셨다. 은밀한 기도는 은밀한 중에 해야 한다. 따라서 가장 공적이고 가장 선한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때때로 하나님과 홀로 지내야 한다.
4. 전도하러 돌아오신 그리스도(36-39)
제자들은 자기들이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의 선생이 그들보다 먼저 일어나신 것을 알고 그 한적한 곳으로 그를 뒤쫓아 갔으며 그곳에서 그리스도가 기도하고 계신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를 몹시 만나고 싶어했으므로 그리스도에게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7절)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선생이 이미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공적인 장소에 나타나도록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그곳이 그들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이런 요청에 대해 ‘아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절)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그리스도는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고 또 자기의 교훈을 설명하고 확증하기 위하여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다.
Ⅵ. 문둥병자를 고치심 1:40-45
이 본문에서 다룰 내용은 그리스도가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일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1. 그리스도의 뜻에 전념하는 방법(40)
그 방법은 이 문둥병자의 태도와 같다. (1) 그는 아주 겸손한 태도를 지녔다. 이 문둥병자는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였다. 이 말의 교훈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겸손한 마음과 존경심을 갖고 그에게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2) 그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확신하여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실로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는다. 그의 신앙은 보통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나이다'(요 11:22)라는 신앙고백 뿐 아니라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말까지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능에 대한 신앙을 특별히 “주께서 저를 위하여 이 것을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명심해야 한다. (3) 그 자신이 ‘주여 원하시면’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그리스도의 뚯에 복종했다. 그는 불쌍한 탄원자로서 자기의 특별한 사정을 겸손히 그리스도에게 문의하고 있다.
2. 그리스도에게서 기대할 것(41,42)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따라 나타날 것이다. 그 문둥병자의 말하는 태도가 기도의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는 그 간청에 응답하셨다. (1) 그리스도께서 민망히 여기셨다. 마가복음에 있는 이 글을 통해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불쌍한 영혼을 구제하려는 연민의 정으로 그 능력을 사용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불행을 당해서야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까지도 아주 다정하게 대해 주신다. (2) 그리스도가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셨다(41절).
그리스도는 영혼을 치유하실 때 저들에게 손을 대셨다. 그리스도는 저들에게 손을 대시면서 병도 치유하셨다. (3) 그리스도가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 불쌍한 문둥병자는 ‘당신이 원하시면’이라고 말했듯이 그리스도의 의지에 조건을 달지만 그리스도께서 ‘내가 원하노니’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의심은 곧 풀어졌다. 그는 기꺼이 자기의 뜻을 의뢰하는 사람들에게 즉시 호의를 베풀고자 하신다.
그 문둥병자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었기 때문에 ‘당신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고, 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믿음에 따라 그의 권능이 얼마나 행해지는지를 보이고자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권능은 이렇듯 말을 동반했고 병은 순식간에 완전히 치유되어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 갔으며 문둥병을 앓았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42절).
3.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을 때 해야할 일(43-45)
그의 호의를 받은 사람은 그의 명령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는 문둥병자를 치유하고 나서 그에게 엄히 경계하셨다. 이 말은 문둥병을 치유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지시라기보다는 그가 치유한 무력한 사람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경계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5:15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기록되었다. 또한 그리스도는 문둥병자에게 명령하여 (1) 그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44절)고 했으며, (2) 그가 제사장에게 몸을 보일 때까지 ‘나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문둥병자가 그 사실을 말해선 안된다고 한 이유는 그의 말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군중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는 알려진 사실들이 이미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자기에게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가능한한 적은 소문으로 선을 베풀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둥병자가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한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문둥병자는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준수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자기의 문둥병을 고쳤다고 알린 그 문둥병자는 좋은 뜻을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며, 또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늘어났을 뿐 다른 나쁜 영향은 없었다. 이 일로 그는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다’.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45절). 이 사실은 그리스도가 떠나셔야만 한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으므로, 시간과 장소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이 어디에 있든간에 영적인 모습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계시며 또 사방에 퍼져 있는 그들을 찾아 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