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0장 회개 설교 말씀 중에서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이면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불을 가지고 성막에 들어가서 분향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우리는 거짓 복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려고 하면 죽습니다. 영혼이 죽어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참 복음인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레10:1-2)
구약의 성막은 현재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부르셔서 주신 제도가 성막을 지을 수 있는 식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지어진 곳이 성막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속죄 받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성소에 항상 임재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현재의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고 함께 하셔서 속죄의 은혜를 주시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성막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이곳을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속죄 받을 수 있는 곳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불을 가지고 들어가니 결국은 죽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강단에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불을 가지고 들어가면 하나님은 저주를 내리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불을 교회 안에 들여와야 합니다. 복음의 불이 사라지면 결국 영혼은 죽게 됩니다.
이 시대는 복음의 불이 사라지고 인본주의 불이 강단에 난무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소견대로 제사장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세상의 지식을 따라서 적당히 하나님의 말씀과 혼합하여 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온전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인본주의 적인 사고를 전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전파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회복하고 교회의 강단이 변화 받는 계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각자 향로를 가지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의 사역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은 매일같이 성소에 있는 분향 단에 불을 점검했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각자 자신의 향로를 가지고 다른 불을 성소에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나답과 아비후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보겠습니다.
‘나답’ 히브리어(나다브 5070) 나답, 이라는 뜻이며 히브리어(나다브 5068) 자원하다, 기쁘다, 헌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나답의 이름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나답은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입니다. 나답은 아론의 장자로서 하나님께 자원되어 기쁘게 봉헌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답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기쁨으로 헌신하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의 사역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면서 장자의 권한을 가졌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런 나답이 하나님께 제대로 헌신하지 못하고 성막에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이미 나답은 제사장으로서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성도들이 나답과 같이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만이 구원을 얻는 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불과 같은 행위의 불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하나님께 나가면 죽게 됩니다.
‘아비후’ 히브리어(아비후 30) 아비후, 라는 뜻이며 ‘아버지는 그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아비후는 아론의 둘째 아들로서 제사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긴 자가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형과 함께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자입니다. 아비후도 둘째 아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권위와 힘을 가지고 하나님께 도전한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인정한 예수 그리스도는 인정하지 않고 나의 고집과 아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아비후와 같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향로를’ 히브리어(마흐타 4289) 향로, 잘라낸 심지를 담는 접시, 라는 뜻이며 히브리어(하타 2846) 잡아채다, 움켜쥐다, 취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구약에서 향로는 불을 담아 성소에 있는 분향 단에 불을 갖다 놓는 기구입니다. 또한 타다 남은 심지를 잘라서 담던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향로에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집어넣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막의 분향 단에 갔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성도들의 예표도 됩니다. 이런 자들은 인본주의 사고를 세상으로부터 취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의 예표입니다. 신약에서 향로는 어떠한 역할을 했습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향로는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구약으로 보면 금 분향 단에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는 향로에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 하나님의 금 제단에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향로에 다른 불을 넣어서 분향 단에 갔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정욕적인 기도를 담아 하나님 앞에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기도를 열심히 향로에 담아서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인 것처럼 생각하여 분향 단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응답하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구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이 전파되는 기도를 향로에 담아서 하나님의 분향 단 앞에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다른 불’ 히브리어(주르 2114 VQPAFS 동사, 칼, 분사능동, 여성, 단수) 모르는 사람, 타인, 외국인, 창녀, 라는 뜻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비록 이들이 제사장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타인과 같은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선택받지 못한 백성을 의미합니다. 아론의 다른 아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엘르아살은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지만 나답과 아비후처럼 다른 불을 하나님의 강단에 올린다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외국인처럼 됩니다.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갔다는 것은 타락한 창녀와 같은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절대 허락하지 않은 불을 가지고 들어간 것은 우상을 섬겨 타락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민18:7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런 직분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사장의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성소에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외인’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주르)입니다. 그렇다면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의 직분을 선물로 받고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해도 괞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에서는 창녀와 같은 신앙이요, 하나님을 절대 모르는 외인과 같은 타국인과 같은 신앙생활을 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주님의 십자가의 의로 구원을 받았는데 나답과 아비후처럼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지 못하고 선물로 받은 십자가의 의를 믿음으로 받았는데 자신의 생각대로 여기에 율법의 행위의 의를 첨가하여 다른 불을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거나 들어간다면 이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불의 기도나 다른 불과 같은 율법의 행위의 의를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결국 영혼은 영원한 저주를 받아 지옥의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내가 교회 안에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타인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저주받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현재 내 향로에는 무엇이 채워져 있습니까? 나의 욕심과, 정욕적인 생각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모든 것을 나의 뜻대로 한다는 생각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아니면 구원을 받는데 믿음과 율법의 행위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이런 것의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가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의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향단에서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레10: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가지고 분향 단에서 분향할 때에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죽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든 것은 다른 불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입니다. 그럼 영적으로 다른 불이 무엇일까요?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율법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분향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얻는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고 인간의 의를 향로에 집어넣어 여호와 앞에 나간다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은 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불을 향로에 집어넣어야 할까요?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한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향로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불을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기 때문에 저주가 내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확증을 받은 불을 향로에 넣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을 넣고 강단에 나왔고 또한 섰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나답과 아비후와 같은 신앙이 아닙니다. 저주받는 인생이 아닙니다.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가면 하나님의 불에 의하여 죽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면 모든 저주는 사라집니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다른 불이 사라져야 합니다. 인본주의 설교가 사라져야 합니다. 기복적인 신앙의 불이 사라져야 합니다. 야차르의 겉 사람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신앙도 사라져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흘러나가는 강단이 되어야 합니다. 구속사의 설교가 한국교회의 강단에 넘쳐나야 합니다. 바라의 속사람을 구원시키는 복음이 넘쳐나야 합니다. 이제부터 기복적인 복의 설교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영혼을 살리는 복음적인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심령의 향로에 겉 사람의 것만 채우려고 하는 정욕적인 기도가 사라져야 합니다. 속사람인 바라의 신령한 몸이 살아날 수 있는 기도로 채워져야 합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아론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앉아있다고 모두가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의 영혼과 심령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믿는 불이 있을 때에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신약의 구원받은 자를 상징합니다. 이제 구원받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올바른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육적인 장자와 둘째 아들의 힘을 믿고 제사장의 사역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참변을 당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제사장의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도가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배우지 않고는 제사장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도도 배워야 하고, 말씀도 배워야 하고, 교회생활도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신약의 제사장의 사역을 교회 안에서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가는 불성실한 신앙의 태도가 없어야 합니다. 몸은 교회에 나왔지만 생각은 타인과 같은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몸과 영혼이 모두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을 선포하고 믿고 행동에 옮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