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장 성경주석 강해 설교말씀은 소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때 고운가루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소제의 규례(레2:1-16)
[1절]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위기 2장은 소제(素祭 grain offering; 민카 מנחה)에 대한 규정이다. ‘소’(素)라는 말은 ‘채식’이라는 뜻이다. ‘소제’는 ‘곡물제사’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앞장의 번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였다면, 본장의 소제는 그의 생애를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고운 가루’(솔렛 סולת fine flour)는, 자신을 부정하시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격을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운 가루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기름은 성경에서 빈번히 사용된 대로 하나님의 영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명하신 일을 완수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伸冤)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예언하였다(사 61: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나사렛 회당에서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 성경 구절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날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눅 4:16-21).
소제의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향기, 곧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격과 온전한 순종 사역의 향기를 나타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성령의 충만한 역사 가운데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였다. 소제는 그것을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뒤에 레위기 5:1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고운 가루로 속죄제물을 삼게 하실 때 그 위에 기름과 유향을 두지 않게 하셨다. 그것은 속죄제물이 대리 형벌과 저주의 죽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고 아름다운 인격과 삶을 상징하며 그것은 향기로운 제물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소제에 기름과 유향을 두어 좋은 냄새를 내게 하셨다고 본다.
[2-3절]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제사 드리는 자는 소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온다. 2절을 다시 번역하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그[제사 드리는 자]는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 기념물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MT, KJV, NASB). 소제물은, 번제물과 달리, 단지 제물의 일부인 기름 섞은 고운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만 취해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랐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려야 하였고 그것은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다.
[4-7절]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본문 4-7절은 소제의 세 가지 종류에 대해 말한다. 첫째는 화덕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그것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누룩을 넣지 않고 얇게 만든 떡)으로 드리는 것이다. 둘째는 번철에 부친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그것은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셋째는 솥에 삶은 것 혹은 프라이팬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솥에 삶은 것’이라는 원어(마르케쉣 מרחשת)의 뜻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삶는 솥’이라는 견해이고(BDB, Langenscheidt, NIV), 다른 하나는 ‘굽는 팬’이라는 견해이다(KB, LXX, KJV). 이 말은 솥에 삶은 것이라는 뜻이든지, 팬에 구운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8-10절]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 . . .
제사 드리는 자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며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제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이것은 화제(火祭)이며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이었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주었고 그것은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다.
[11-12절]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소제물에 누룩을 넣지 못하게 하셨고 또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하게 하셨다. 누룩이나 꿀은 처음 익은 열매로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지만, 향기로운 냄새를 위해 제단에 올리지 말아야 했다. 누룩은 성경에서 죄와 부패성을 상징한다. 또 꿀은 육신적 쾌락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고 육신적 즐거움을 구하지도 않으셨다. 그는 거룩한 생애를 사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의 길을 걸으셨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삶을 본받아야 한다.
[13절]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 . . .
또 하나님께서는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소금은 맛과 불변성을 상징한다고 본다. 소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짠맛이다. 음식에는 소금을 치지 않으면 맛이 없고 적당히 소금을 쳐야 맛이 난다. 소금의 중요한 또 다른 역할은 썩는 것을 막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소금은 불변성과 영속성의 상징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변적 언약을 ‘소금 언약’이라고 부르셨다. 민수기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擧祭, 드는 제물)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應食)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소제에 소금을 치는 것은 이 두 가지 뜻, 곧 소제의 음식에 맛을 내게 하며 또 이것이 하나님의 불변적 언약의 한 내용임을 나타내는 뜻이 다 있다고 본다.
[14-16절]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하나님께서는 첫 이삭의 소제는 그것을 볶아 찧은 것으로 소제를 드릴 것을 명하셨다. 볶아서 찧는다는 것 외에는 다른 소제의 규례와 동일하다. 첫 이삭은 볶아서 찧어야 잘 찧어질 것이다.
레위기 2장의 소제에 대한 규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는가? 첫째로, 우리는 소제를 통해 우선 하나님께서 주신 곡물들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곡물은 인간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에 대해 항상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의를 알자. 고운 가루와 같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부정하시며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셨다. 그는 흠이 없는 인격자이셨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율법의 의를 온전히 이루셨다. 그는 종과 같이 낮아지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셨다(빌 2:6-8).
로마서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義)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구원이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순종을 본받자. 고운 가루는 흠과 점이 없는 의로운 인격을 상징한다고 본다. 우리는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그를 본받자. 우리는 양심에 거리끼는 모든 죄를 다 청산해야 한다. 회개는 죄의 청산이다. 회개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회개는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빌립보서 4:8-9,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우리는 의와 순종을 본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