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장 복음 설교 말씀은 다니엘과 세 친구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한다. 이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다. 바벨론에서 이름이 바뀐다. 다니엘은 벨드사살로 하나냐는 사드락으로 미사엘은 메삭으로 아사랴는 아벳느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여호와 신앙을 지키면서 생활했다.
Ⅰ. 포로가 된 다니엘 1:1-7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의 통치 원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침공하였다. 때는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년되는 해였다(1,2절).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으며 왕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과 물건을 취하였다. 여호야김에 대해서는 자기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고는 계속 통치하도록 그대로 남겨 두었다.
(2)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읍이나 그 나라를 파괴하지 않았으며 단지 히스기야가 바벨론 왕의 사자들에게 그의 보물들을 보여 주었을 때 내려진, 바벨론에 의해 화를 당하리라는 첫 번 경고만 성취시켰을 뿐이었다(사 39:6,7). 성소의 기명들이 옮겨졌다(2절). 바벨론 왕에 의해서 많은 성물들이 그의 신의 묘로 옮겨졌는데 거기서 그는 맹목적인 신앙으로 그의 승전에 대한 찬양을 드렸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보라. 그의 백성이 다른 신들의 형상을 그의 전에 가져왔었기에 이제 그는 성전의 기구들이 다른 신들의 보고로 옮겨지는 것을 그대로 묵과하고 계시는 것이다.
옮겨진 기물들은 단지 ‘얼마’에 불과했다. 즉 남아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는 남아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이 올바른 방도를 취하는가 보기 위해서였다(참조. 렘 27:18). 아이들과 소년들, 특별히 왕족과 귀족의 가문인 자들로 아름답고 유망한 자들이 붙잡혀 갔다. 이들은 본토에 있는 그들 부모들의 충성을 얻어내기 위한 볼모로 느부갓네살에게 붙잡혀 가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붙잡아 가서는 그들을 등용시킬 목적으로 교육을 시켰다. 바벨론 왕은 이들 소년들을 선발하기 위한 지시를 내렸다(4절). 그들은 신체적으로 흠이 없어야 했으며 아름답고 잘 생겨야 했을 뿐 아니라 ‘모든 재주를 통달’해야 했고, ‘지식이 구비’되어 있어야 했으며 ‘학문에 익숙’하여야 했다.
그가 소년들을 택하려 했던 것은 다루기 쉬울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을 쉬 잊고 갈대아 사람이 되리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왕의 앞에 서서’ 그의 일을 보좌할 만큼의 능력을 갖춰야만 하였다. 왕은 그들의 교육에 대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배워야만 하였다. 그들이 그처럼 학문을 배워야 했던 것은 자기 세대를 봉사할 자격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날마다 왕의 진미와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먹었다(5절). 이것은 느부갓네살의 관용과 인간성을 엿보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잘 교육하기 위해서는 잘 부양시켜야 한다.
(3)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은 왕족으로서 ‘유다 자손’이었다. 아마도 다윗의 집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다 싶다. ‘환관장’은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의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는 그들을 귀화시켜서 갈대아인이 되게 하는 표시로 그러한 것이었다. 그들의 히브리식 이름은 할례시에 받은 것으로 각각 그 이름들 안에 하나님 혹은 여호와에 해당되는 용어가 들어 있었다. 각각의 이름들의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니엘 : 하나님은 나의 심판관이시다. 하나냐 : 여호와의 은혜. 미사엘 : 하나님은 강한 분이시다. 아사랴 : 여호와는 도움이시라. 갈대아인들은 그들로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그들의 어린 시절의 인도자를 잊어 버리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갈대아의 우상 숭배의 냄새를 풍기는 이름들을 지어 주었다. ‘벨드사살’은 “벨의 감춰진 보물을 지키는 자”라는 의미이고 ‘사드락’은 “태양의 영감”이란 의미로 태양은 곧 갈대아인들이 숭배하던 것이었다. ‘메삭’은 “삭 여신에 속한 자”라는 의미로 비너스가 이 이름으로 숭배를 받았다. ‘아벳느고’는 “밝게 비치는 불의 종”이라는 의미로 이 역시 그들이 숭배한 것이었다.
Ⅱ.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함 1:8-16
(1) 다니엘은 마치 요셉이 전옥에게 은총을 입었던 것처럼 ‘환관장’에게 은총을 입었다(9절).
(2) 다니엘은 꿋꿋이 자기의 신앙을 지켰다. 비록 그들이 그의 이름을 바꾸기는 했으나 그의 본성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그들이 그를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그는 끝까지 참 이스라엘 사람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는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하였다(8절). 그의 동무들도 같은 결의를 나타내었다(11절). 이러한 결심은 양심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이 왕의 진미를 먹거나 왕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죄될 것이 없는 것이었다.
1)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죄가 될까 해서 식사에 대해서조차 용의주도하였다. 때때로 진미로서, 그들 앞에 율법이 금하고 있는 돼지고기같은 것이 나오기도 하였을 것이다. 혹은 그것이 우상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것이거나 우상의 이름으로 축사도니 것이나 아닐까 그들은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음식에 있어서도 타민족과 크게 구별되어졌다(레 11:45,46). 만일 어떤 명령이 하나님의 금하시는 것을 거역하는 것일 경우 그들은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야만 하였다.
2) 그들은 그것이 그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죄의 원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매우 경계한 것이었다.
3) 예루살렘은 곤궁 가운데 있었으며 게다가 그들 자신들로 포로로 있는 처지였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포도주를 마시고자 하지 아니했다. 그만큼이나 그들은 ‘요셉의 재난’을 슬퍼하였다.
(3)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게 해 달라고 구했을 때 환관장은 그것을 반대했는데 이는 만일 그와 그의 동무들이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안색이 좋지 않게 되면 그의 목이 위태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10절). 다니엘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시험해 볼 것을 구하였다. 그는 감독하는 자에게 탄원하였다.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그 후에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가 보십시오”(13절). 그대로 시험이 행해졌다.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은 물과 채식으로 열흘 동안을 지냈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15절).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주의한 결과이겠으나, 적은 것으로 큰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그들을 감독하는 자는 그들로 자기들의 양심을 거스려 억지로 먹도록 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바란 대로 그들에게 ‘물과 채식’을 주었다(16절). 이 절제된 음식은 그들로 그들의 탁월한 봉사를 잘 수행케 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맑고 깨끗한 정신을 유지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시련으로 단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부정의 삶을 산 그들은 맹렬한 풀무불과 사자굴에 더욱 쉽게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Ⅲ. 탁월한 네 소년의 지혜와 지식 1:17-21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에게 주신 큰 학식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 그것은 그들이 잃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해서 명예와 낙을 빼앗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상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학식을 주심으로써 더 큰 명예와 낙을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2) 그것은 그들의 성결함에 대한 상급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가장 작은 일에 대해서까지라도 자기들의 신앙을 지켰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보답을 해주셨다. 특히 다니엘에게는 갑절의 상을 주셨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신적인 지혜와 명철로써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았던 것이다. 3년의 교육 기간 후에 그들은 왕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18절). 그러자 왕이 친히 그들을 시험하여 보았으며 ‘말하여 보았다'(19절). 왕은 지혜와 총명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해서 그들을 시험하였으며 그들이 모든 기존 학자들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은 시험 후에, 포로로 잡혀온 그들 유대인 소년들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더욱 낫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였다(20절). 이들 소년들은 모든 나이든 학자들보다 그 지혜가 십 배나 더 나았다. 이러한 판정이 있은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되었다(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