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2Co) 6장 설교 말씀] 새 언약 일꾼의 자세(고후6:1-18)

고린도후서 6장 설교 말씀은 새 언약 일꾼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한다. 구원받은 백성은 새 언약의 일꾼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관용과 화해의 권면을 하고 있다.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거짓 이단과 함께 하면 안 된다. 다른 복음을 따라가면 안 된다.

I. 바울의 권면 6:1-10

1. 권면(1)

청중들이 은혜와 자비를 받아들이도록 권면하는 것이 복음 사역자들의 직책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는 높은 호칭으로 존경 받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 아래서 일하는 자들이다. 만일 그들이 신실하다면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할 것이며 그들의 수고는 열매를 거둘 것이다. 복음의 도를 살펴보라. 그것은 거칠거나 엄하지 않다. 그것은 온화함과 온유함으로 간청하며 소원하는 것이다.

2. 사도가 사용한 논증과 방법(2-10)

[1] 지금이 제공된 은혜를 받을만한 가장 적합한 때다. 2절 말씀이 그것을 보여 준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있을런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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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들의 복음 전파가 망해 받지 않으려는 그들의 주의(3절). 다른 이들이 매우 쉽게 성내는 이들이면 우리는 그들을 성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역자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3] 하나님의 사역자가된 후 모든 일에 있어 자신들이 신실했음을 계속해서 증거함(4절). 사도의 위대한 바램은 하나님의 종이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을 그렇게 증거하는 것이었다. (1) 환난 가운데서의 많은 인내로 증거하고자 했다, 그는 위대한 수난자로서 갖가지 환난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가운데서 그는 많은 인내를 쌓았다(4,5절).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증거하고자 하는 자들은 평안했을 때 뿐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도, 그리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을 하고 있을 때 뿐 아니라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때에도 똑같이 자신들이 신실했음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한다.

(2) 선한 원칙들에 준거하여 행한 것으로 증거하고자 했다. 그러면 그의 행위가 준거한 원칙들은 무엇이었는가(6,7절-먼저 깨끗함이었다. 깨끗함 없이는 경건이 있을 수 없다. 지식이 또한 그 원칙이었다. 이 지식이 없는 열정은 단지 광신에 불과하다. 그는 또한 ‘오래 참음과 자비함’으로 행했다. 이는 사람들의 무정한 마음과 가혹한 대우 등을 견디어 낸 것을 말한다. 그는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 가운데서 행했으며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부귀의 유혹과 역경의 유혹을 모두 이겨냈다.

(3) 온갖 다양한 여건들 속에서 마땅한 성품과 마땅한 행동을 한 것으로 증거하고자 했다(8-10절).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명예와 불명예,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에 접했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명예의 유혹, 즉 교만하지 않고 좋은 평판을 지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명예의 유혹, 즉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없이 책망을 감수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서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아주 선한 자들로 말했으며 어떤 이들은 아주 악한 자들로 말했다. 즉 어떤 이들은 그들을 사기꾼으로 생각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을 참된 자들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는 논평할 가치도 없는 무명한 자들로 무시되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에서 그들은 유명한 자들이었으며 위대하게 평가받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죽는 자들 같았으나 ‘그러나 보라 우리가 살고'(9절)라고 말했다. 그들은 징계 받았으며 종종 법에 의해 처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죽임을 당하지 아니했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근심하는 자들 같이 의기 소침하고 침울한 무리들 같이 생각되어졌으나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 안 에서 항상 기뻐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처럼 업신여김을 당했으나 도리어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전파함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케 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자들 같았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러한 역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인 것이다.

Ⅱ. 깊은 애정을 가지고 특별히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함 6:11-18

사도는 그들이 불신자들과 섞이는 것에 대해 경계시킨다.

[1] 고린도 성도들에 대해 매우 온화한 애정의 고백과 함께 주의를 준다(11-13절). 그는 자신이 이 고린도 성도들에 대하여 품고 있었던 따뜻한 애정을 말로 표현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11절). 사도는 계속해서 말한다.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12절). 이는 곧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봉사를 너희 모두를 위해 기꺼이 다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잘못은 너희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이는 너희가 너희 자신 안에서 좁아졌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보답은 단지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듯이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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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4절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한 것처럼 불신자들과 섞이지 말 것을 주의시킨다. 선한 사람들이 악하고 속된 것에 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보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해칠 위험이 더 많다. 우리는 악한 사람들, 불신자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그들을 친한 친구로 선택해서는 안되며, 그들과 신앙적인 교제를 갖는다는 것은 더욱더 안 된다. 그것은 지극히 큰 모순이다(14,15절). 신자들은 의로우나 불신자들은 불의하다.

신자들은 주안에서 빛 된 자들이나 불신자들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함께 편안한 교제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서로 서로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을 더럽히는 것이다(16절). 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사이에는 어떠한 일치도 있을 수 없다. 불신자들과 교제하는 것은 불결하게 되는 위험과 버림받게 되는 위험 등 많은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마치 문둥병자나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피하듯이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송진을 만지고서 더러워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는 죄로 인해서 더러워진 사람들과 교제함으로 자신들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내려 주시고 약속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비열하게 배은망덕하는 것이 된다(18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버지가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이보다 더 큰 영예와 행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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