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성령의 은사
1-11절,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1-3절]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신령한 것’은 성령의 은사들을 가리킨다. 사람은 돈이나 건강 같은 문제는 쉽게 관심을 가지고 어느 정도 지식도 가지지만, 하나님과 죄와 구원의 문제는 관심이 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시며 우리에게 참 기쁨과 평강이 되신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 다녔으나 이제 그 허무한 것들에게서 구원을 받아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와서 그를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살전 1:9).
성도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구원을 받는데 그때 바른 신앙고백을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할 자’(아나데마)[저주받은 자]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다. 성도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하며, 그것이 구원받은 표이다.
[4-7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카리스마)는 값없이 주신 선물을 가리키며, ‘직임’ (디아코니아)은 봉사의 직분을 가리키고, ‘역사(役事)’(엔에르게마)는 일하심이라는 뜻이다.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은사들과 직임들과 역사들은 삼위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성령께서 다양한 은사들을 주시는 목적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것은 개인의 유익보다 특히 교회 전체의 유익을 말한다고 본다.
[8-11절]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지혜의 말씀’은 현실에 바르게 대처하게 하는 말씀을 가리키며,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지식을 가리킬 것이다. 이 둘은 가르침의 직분에 관계된다. ‘믿음’의 은사는 기적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언함’은 하나님의 뜻을 대언(代言)하거나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이며, ‘영들 분별함’은 사람들의 생각들을 분별하는 것을 가리키며, ‘각종 방언 말함’은 각 나라 언어들을 말하는 것이고, ‘방언들 통역함’은 그 언어들을 통역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성경에서 방언은 외국어를 가리킨다고 본다.
신약성경에서 ‘방언’이라는 원어(글로싸)는 ‘언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행 2:11; 계 5:9; 7:9; 10:11; 11:9; 13:7; 14:6; 17:15). 오순절에 약 15개 지역에서 예루살렘에 모여온 사람들은 각각 자기들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였고(행 2:6)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 2:8)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라고 말했다(행 2:11). 또 성경에 ‘새 방언들’(막 16:17), ‘다른 방언들’(행 2:4), ‘방언들’(행 10:46; 19:6)이라는 표현들과,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다든지, 그것을 기도와 찬송에 사용한다든지, 그것을 통역한다는 것 등도 방언이 언어라는 것을 잘 보인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도시대에 신약성경이 완성된 후에 거두어졌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거두신 까닭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전달하고 확증하는 목적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신약성경이 기록되기까지 필요했고 그것이 완성된 후 거두어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건물을 짓기 위해 설치된 비계들이 건물이 완성된 후 철거되는 것과 같았다.
성령의 은사들은 다양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한 성령께서 자기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돌아보신다.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양육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개인을 중생(重生)시키시고 점점 더 거룩하여지게 하시며 마침내 교회 전체가 든든히 세워지게 하신다.
로마서 12:6-8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초자연적 은사들 외에 여러 가지 자연적 은사들도 나누어주심으로 교회에게 유익을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은사, 교인들을 돌보며 다스리는 은사, 병든 자들이나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돌보며 위로하는 은사 등이 그러하다. 또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은사도 있다. 그것들은 다 교회 전체에 유익을 주는 것들이며 사도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교회들 안에 계속 있는 은사들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다. 참된 신앙고백은 구원받은 증거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들을 주셔서 교회에 유익이 있게 하신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교회의 창설기인 사도시대에 일시적으로 주셨다고 보인다.
12-31절, 한 몸, 많은 지체들
[12-13절]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이는]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하셨음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이다. 사람의 몸은 머리, 눈, 코, 귀, 입, 손, 발 등 많은 지체들이 있는데, 뇌, 위, 간, 폐, 심장 등 약 128개의 기관들과 200개 이상의 뼈들과 600개 이상의 근육들로 구성되었고, 뇌(腦)는 약 80억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의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도 많은 지체들과 직분들이 있어 한 교회를 이룬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들이 된 것은 성령의 세례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 성령 세례는 민족, 피부 색깔, 사회적 신분, 직업, 경제 정도 등을 초월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 믿고 죄씻음 받아 한 몸이 되는 경험이다. 그것은 어떤 이들이 잘못 생각하듯이 믿는 이들이 두 번째의 경험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모든 믿는 자들이 이미 받은 것이며 중생(重生)과 동일한 사건이다.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는 말씀은 성령을 물로 비유하여 성령을 받은 것을 묘사한 것이다(요 7:37-39).
[14-20절]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몸은 한 지체뿐이 아니고 여러 지체이다. 각 지체는 다른 지체와 다르다고 해서 자기가 몸에 붙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발과 손, 귀와 눈은 서로 달라도 다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이다. 또 몸의 각 지체는 다 필요한 지체이다. 몸에는 눈도 귀도 코도 다 필요하다. 한 지체만으론 몸이 될 수 없다. 한 지체만 가득한 몸은 없다. 몸의 각 지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한 몸의 각 지체,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21-27절]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몸의 지체는 어느 것 하나도 불필요하거나 쓸데없는 것이 없다. 눈이 손더러 ‘너는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쓸데없다’고 말할 수 없다. 손이 없다면, 눈이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그것을 집어올 수 없다. 또 머리가 발더러 ‘너는 걸어다닐 줄만 알지 생각이 부족하니 쓸데없다’고 말할 수 없다. 발이 없다면, 머리가 아무리 좋은 것을 생각해도,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다. 이와 같이, 몸의 각 지체는 다른 지체를 무시하여 쓸데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몸의 지체들 중에는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 중요한 것이 많다. 눈은 약한 지체이지만 참으로 중요하며, 두뇌나 심장이나 폐 등도 약하지만, 매우 중요한 지체들이다. 또 몸의 지체들 중 덜 귀히 여기는 것이나 덜 아름다운 것은 옷을 입히거나 신을 신기지만, 아름다운 얼굴은 가릴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체를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신다. 그래서 각 지체로 서로 싸우거나 분열치 않고 서로를 돌아보게 하시는 것이다.
몸의 지체 중 한 부분이 아프면 온 몸이 아프다. 몸의 모든 지체는 그 아픔을 함께 나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지체는 없다. 모든 지체가 한 몸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는 함께 그 영광을 누리며 즐거워한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성악가는 입과 목만 칭찬을 받지 않고 온 몸이 칭찬을 받고, 금메달을 딴 마라톤 선수는 발과 다리만 축하를 받지 않고 온 몸이 축하를 받는다. 모든 지체는 한 지체의 영광에 참여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는 그 몸의 각 지체이다. 그러므로 각 지체는 다른 지체들과 다르다고 자기는 몸에 붙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각 지체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한 지체만 가지고 몸이 될 수는 없다. 또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무시하지 말고 서로 분쟁하지 말고 서로 돌아보아야 한다. 한 지체의 고통은 모든 지체의 고통이요, 한 지체의 영광은 모든 지체의 영광이다.
[28-31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는 교회 중에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셨고 여러 직분들을 세우셨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들 혹은 직분들로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병 고침,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 말함 등을 말한다. 그는 에베소서에서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 등의 직분들을 말하였다(엡 4:11).
사도 바울의 의도는 성령의 은사들이나 직분들을 다 열거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한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들과 여러 직분들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뿐이라고 본다. 한 지체만으로는 몸이 되지 못하듯이, 교회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한가지 은사, 한가지 직분만 주신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은사들과 직분들이 있다. 이것이 교회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은사들에는 크고 작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함이 있으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다. 다음 장들에서 교훈하는 대로, 더욱 큰 은사는 다른 성도에게 유익을 끼치는 은사, 다른 이들의 믿음과 사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은사를 말하는 것 같다. 또 ‘제일 좋은 길’이란 다음 장에 말한 사랑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것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되 사랑의 원리를 따라 하라는 교훈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을 때 성령의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다 성령을 받았다. 성령의 세례는 성령의 은사를 동반하는 성령의 충만함이 아니고 성령께서 믿는 자의 심령에 처음으로 들어오시는 사건이다. 그것은 중생과 동일하다. 우리는 성령의 세례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몸에 지체들이 많듯이, 교회에는 많은 지체들, 즉 여러 가지 은사들과 직분들이 있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임을 인식하고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말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가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더 큰 은사는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 전체에 유익을 주는 은사를 가리켰다고 본다.